[이슈추적]생태계파괴 현장 진단/이번엔 영월 西江 신음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영월 동강에 이어 서강도 심각한 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위협에 처해 있다.

강원 평창군과 영월군을 지나는 서강은 수달 등 각종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 국내에서 4, 5군데밖에 남지 않은 1급수 하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강댐 건설 문제로 국민의 관심이 동강에 쏠려 있는 동안 서강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태계가 쓰레기매립장 건설과 무용지물인 제방축조 등으로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21, 22일 이틀 동안 서강 현장을 찾아 실태를 긴급점검했다.

▼쓰레기매립장 건립▼

22일 영월군 북면 덕상리 거리실계곡 입구. 서강의 최상류 중 하나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는 이날 인근 서면 옹정리 주민과 최병성(崔炳聖·38) 목사 등 7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영월군은 지난해 8월 덕상리 419 거리실계곡 1만여평 부지에 114억여원을 들여 2001년 6월까지 하루 32t 용량의 쓰레기를 매립과 소각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종합처리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영월군의 이같은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조를 짜 날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

“이곳은 천혜의 비경과 원앙 파랑새 쉬리 납자루 떼 등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이곳에 매립장이 들어서 침출수가 서강으로 흘러들면 서강이 오염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쓰레기처리장 반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최목사의 말이다.

최목사와 주민들이 영월군의 계획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부지 선정과정이 너무 자의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

영월군은 96년 동아엔지니어링에 환경성 조사를 의뢰, 그 결과를 토대로 97년 7월 영월읍 팔괴리를 쓰레기처리장 최적지로 선정했다가 부지 매입의 어려움과 주민들의 반발로 계획을 백지화했다.

영월군은 선거가 끝난 98년 당초 환경성 조사에서 점수가 가장 낮았던 덕상리 일대 4곳을 새 후보지로 추가 선정한 다음 관련 공무원 몇 사람이 자체 조사만으로 거리실 일대를 최종후보지로 확정했다. 20여가지의 생태계 영향 평가항목 중 수목분포상태만을 평가하는 등 선정기준과 평가방식도 자의적이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영월군이 거리실을 부지로 선정하기 위해 각종 조사를 왜곡한 흔적도 많다. 영월군은 쓰레기처리장에 이르는 진입로 공사구간이 실제로는 1.5㎞ 가량인데도 이를 600여m로 축소했다. 또 영월군의 조사자료에는 반경 2㎞ 이내 지역에 거주민이 없는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2개 마을 40여가구가 살고 있다. 쓰레기처리장 부지 주변 산의 경사도도 50도 가량으로 가파른데도 30도로 기록, 부지로 적절한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

선정과정과 기준상의 문제는 결국 잘못된 부지선정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하류 10∼18㎞안에는 15만 제천시민의 식수원인 장곡취수장 등 3곳의 취수장이 있어 식수원 오염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환경부 지침은 하류 15㎞ 안에 식수원이 있을 경우 쓰레기처리시설의 설치를 최대한 피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영월군이 계획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거리실 부지가 주민 반발이 적고 부지 매입이 손쉽다는 이점 때문. 실제로 거리실 부지의 80% 가량은 현대시멘트 영월공장 소유지와 군유지로 이뤄져 있어 부지 매입상의 어려움이 별로 없다.

이에 대해 영월군 관계자도 “거리실 일대가 현대 소유 땅이 많아 터 구입이 쉽고 인근에 주민들도 적어 좋은 입지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읍내 쓰레기처리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서둘러 부지를 마련해야 하나 마땅한 부지가 없다”며 “쓰레기처리장이 건설되더라도 침출수처리시설을 갖춰 수질오염을 방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방공사▼

쓰레기처리장 부지에서 강줄기를 따라 2㎞ 가량 아래쪽인 영월군 서면 신천리 새내들강변. 서강의 지류인 주천강과 평창강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지난해부터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양쪽 강둑을 따라 각각 2.1㎞의 제방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생태계 훼손이 심각한 상태.

강바닥은 대형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져 곳곳에 물흐름이 끊긴 채 물웅덩이가 형성돼 있었고 물웅덩이에는 1급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싯누런 물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이미 물이 썩어 물빛이 잉크를 풀어놓은 듯 짙은 남색을 띠는 곳도 있었다. 양쪽 수천평 넒이의 강변에는 강바닥에서 퍼올려진 굵은 자갈과 모래가 2∼3m 높이로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동강과 서강 일대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고주서씨(43)는 “이곳은 고니 원앙 등 희귀조들이 무리지어 서식하고 갈대밭이 숲을 이루던 곳이었는데 이젠 흔적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제방공사의 목적은 침수피해 방지. 그러나 강바닥에서 8∼9m 높이인 제방 너머 농지는 대부분 제방 높이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높아 침수피해 방지효과가 거의 없어 보였다.

신천리 주민 김모씨(50)는 “마을 지대가 높아 홍수 피해를 거의 보지 않는 곳인데 왜 제방을 쌓는지 모르겠다”며 “국토관리청이 농로 등을 닦아주는 등 민원을 해결해주고 있어 잠자코 있다”고 말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원주국토관리청은 지난해초부터 54억여원을 들여 남면 북쌍리 평창강변 2.7㎞구간 등 모두 3곳에서 제방공사를 진행 중이다. 다른 곳의 상황도 새내들강변과 마찬가지.

영월군도 드러내놓지는 못하지만 “침수피해가 잦은 저지대 일부 구간만 하면 될 것을 무리하게 공사를 확대해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며 제방공사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눈치.

이에 대해 원주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원래 강원도에서 해야 할 사업이지만 도 예산이 부족해 우리가 나선 것”이라며 “영월군과 강원도의 의견을 수렴해 공사를 진행 중이며 공사가 끝나면 강변을 원상태로 복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대 김범철(金凡徹·환경생태학)교수는 “제방을 쌓는 과정에서 강바닥이 파헤쳐지면 물속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돼 먹이연쇄가 끊어지는 등 주변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회복도 어렵다”며 “생태계 보전과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제방을 허물고 자연하천으로 되돌리는 게 국내외의 추세”라고 말했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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