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성남시에는 현재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사무직종의 공공근로 일자리는 600여개나 비어 있다. 정보화 관련 직종의 경기가 호전되면서 이 부문의 공공근로자들이 잇따라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직자를 돕기 위해 정부가 올 한해 1조1000억원을 투입키로 한 공공근로사업이 빗나간 인력 수요 예측과 경직된 행정관행 때문에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26일 본보 취재팀의 조사결과 대부분의 시군구에서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사무직 공공근로 분야는 일자리가 남아돌고 있다. 반면 고령자나 빈민층이 주로 찾는 공원 청소, 재활용품 선별 등의 단순직종은 일자리가 없어 대기자가 늘어서 있는 형편이다.
서울 노원구는 1월초 공공근로자 1836명을 선발했으나 이미 이중 800여명이 그만뒀다. 대부분 사무 전산직종의 젊은 공공근로자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나간 것이다. 구청측은 계속 충원을 해왔지만 26일 현재 사무직 전산직 등 157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다. 이제는 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든 형편이다.
하지만 공공근로 희망자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다. 1·4분기 노원구의 공공근로 신청자는 무려 3031명(이중 부적격자 138명)으로 정원보다 1000명 가량 많았다. 3월말 현재 단순 노무 직종에는 아직도 253명의 대기자가 있다.
동작구의 경우도 1월에 1200명의 공공근로 인력을 투입했으나 이중 450명이 그만뒀다. 구 청 관계자는 “그만둔 사람 중 반 가량이 20, 30대”라고 말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고학력자들이 주로 하는 사무직종에 공공근로 인력을 많이 배정했는데 대부분 이들이 빠져나갔고 대타도 구하기 힘들어 1·4분기 예산 중 20% 가량을 다음 분기로 이월시킬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지방도 마찬가지. 경기 성남시는 1월초 4611명을 공공근로에 투입했지만 중간에 그만둔 사람이 많아 631개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단순직종의 경우는 대기자가 200여명이나 된다.
안양시도 1·4분기 투입 근로자 중 이미 40%가 넘는 800명이 그만뒀다. 그러나 안양시는 61세 이상자에게는 아예 공공근로 신청 기회조차 주지 않아 고령자들은 공공근로를 통한 이른바 ‘공적 부조’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도 1월10일부터 시작된 공공근로사업 1단계사업(3월31일까지)에 6910명을 투입했으나 한달반 만에 1400여명이 그만뒀다. 중도포기자 중에는 재취업자가 4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처럼 한쪽에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한쪽에선 공공근로 일자리가 없어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지난해말 행정자치부가 2000년도 공공근로 인력 배정 계획을 짜면서 화이트칼라층의 대량 실직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사무 전산 정보 관련 직종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가 없어 난리인데 노인들에게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허드렛일을 주고 세금을 낭비한다”는 지적에 따라 행자부는 공공근로자 중 61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을 5% 이내로 제한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사무직 공공근로에 많이 투입됐던 20대 젊은층의 2월 실업률이 1년 전에 비해 4.3%포인트 낮아지는 등 올들어 젊은층 사무 서비스 업종의 취업률이 급속히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행자부와 대부분의 시군구는 지난해말에 짜여진 계획표에 따라 공공근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경직된 행정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정부 여당은 ‘총선용’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실직자 구제는 겨울철에 해야 한다”며 올 공공근로사업 예산 1조1000억원 중 64%인 7000억원을 1·4분기에 집중 배정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중 상당액이 2·4분기로 이월되고 실제로 일하고 싶은 극빈층은 공공근로도 하지 못하고 겨울을 넘겼다.
행자부 관계자는 “올해 시군구 차원에서 집행할 공공근로 예산은 총7200억원으로 이중 5000억원이 1·4분기에 투입됐는데 중도 탈락자 등이 많아 1000억원 가량이 이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근로는 공적부조의 성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에 공공기관이 노동력을 동원하는 측면이 강해 불필요한 단순직종 공공근로에 예산을 많이 배정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1·4분기 상황을 감안해 2·4분기에는 직종 및 인원 배분을 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기홍·이명건〓울산·성남〓정재락·남경현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