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말, 동아일보사 문선(文選) 부서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던 한 소년이 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해 60여년 만에 거액의 성금을 들고 동아일보사를 찾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SY투자사를 운영하는 양삼영(梁三永·78)씨. 민주통일당 당수를 지낸 고 양일동(梁一東)선생의 친동생인 양씨는 지난달 30일 서울 동아일보사를 방문해 오명(吳明)사장에게 100만달러(약 11억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그는 이 성금을 민주투사의 자녀 등 불우학생과 나환자촌 지원사업, 그리고 독도문제 연구기금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양씨가 동아일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전북 군산시 서수면 고향의 소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15세 때 상경하면서부터. 청과물가게에서 두달 일한 품삯 4원을 들고 상경한 양씨는 우연히 동아일보 직원을 만나 문선부 견습생으로 입사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대단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우국지사이자 지식인이었지요.”
양씨는 “편집회의때 기자들이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고 나도 공부해 저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부 이근영(李根榮)기자에게 이 결심을 털어놓았고 그로부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큰 은혜’를 입었다. 그는 당시 본정(本町)경찰서를 담당하던 곽복산(郭福山·50년대 편집국장)기자와 함께 양씨가 도항증을 받아 1939년 일본 유학길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왔다.
5년간의 주경야독 끝에 도쿄(東京)의 대성중학을 졸업하고 1944년 주오대학에 입학한 양씨는 유학생 독립운동에 관여하다가 강제 출국돼 고국에서 광복을 맞았다.
다시 도일해 학업을 마친 양씨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거류민단 동경지부 의장도 지냈다. 90년에는 일본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도미해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평생 남의 나라에 살면서 동아일보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나중에 읽으려고 해둔 스크랩도 수십권입니다.”
양씨는 타국살이 중에도 자녀들을 제대로 키운 게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3남1녀중 3명이 박사이고 딸 민자씨는 현재 유네스코본부의 아시아태평양지역센터 책임자다.
양씨는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에 미온적인 것이 가장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성금 일부를 독도문제 연구사업에 쓰도록 한 것도 이 때문.
양씨는 “한국은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위기를 완전히 극복한 것도 아닌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동아일보가 앞장서 국민의식 개혁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