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다들 말리더군요. 왜 멀쩡한 직장 버리고 보수가 쥐꼬리만한 곳으로 가느냐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돈으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새정부 출범후 공직 개방정책에 따라 민간 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자리를 옮긴 전문가들이 공직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주목받는 전문가들▼
기획예산처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민간 전문가 출신은 공기업 민영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권사무관과 박종구(朴鍾九·42)공공관리단장, 박진(朴進·36)행정2팀장, 김재열(金材烈·31)재정2팀장 등이다.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현재 휴직중)인 박단장은 98년 3월 공직에 들어온 뒤 포항제철 한국통신 한국전력 등 11개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공기업 종사자 16만4000명중 4만1000명을 감축하는 등 공기업 수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또 박팀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6년간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다 98년 5월 공직에 들어와 정부개혁 작업을 맡았다. 372개였던 정부위원회를 160여개로 줄이고 정부 조직을 축소 개편하는 일에 참여했다.
재정2팀 소속 김사무관은 컴퓨터를 활용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급격히 증가한 국가 채권채무의 종합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해 올 2월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김사무관은 93년 청와대 전산망에 침입한 해커로 실형까지 선고받았다가 대우그룹 비서실을 거쳐 98년 4월 기획예산처에 특채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해 8월 중앙인사위원회에 합류한 박기준(朴基俊·35)직무분석과장도 공직에 잘 적응한 민간 전문가로 꼽힌다. 공인회계사인 박과장은 중앙인사위에서 개방형 임용제 도입의 실무를 맡았다.
지방정부에서 활약하는 민간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 강우원(姜佑源·40)도시계획상임기획단장과 대구시 최창학(崔昌學·42)정보화담당관 등이다.
서울대 행정학 박사출신인 강단장은 98년 6월 신문에 ‘자치행정 전문가인 나를 사가시오’라는 광고를 낸 뒤 경북 김천시에 ‘팔려가’ 1년간 정책연구실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9월 서울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장으로 임용됐다.
역시 행정학 박사인 최담당관은 지난해 1월 대구시에 합류해 대구시 정보화 사업의 견인차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 동아일보사가 실시한 16개 광역 시도 정보화평가에서 최우수 정보화 최고책임자(CIO)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직에 들어와 보니▼
뒤늦게 공직에 몸담은 민간 전문가들은 “밖에서 듣고 보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유능하고 열심히 일한다”고 평가했다.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시스템이 비효율적이어서 정부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민간전문가는 “공무원들은 국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국회 보고나 회의자료 준비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의 반응▼
공직에 들어온 민간 전문가들에 대해 기존 공무원들은 “민간분야에서 쌓은 전문성과 참신한 시각에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고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부 공무원은 민간전문가들이 공직에 들어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도록 일정기간 적응 교육을 실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민간인들에게 공직을 개방해 그들의 전문 지식을 활용할 필요도 있지만 공직 내부에서 묵묵히 일하는 우수 인력들이 공직사회에 실망해 빠져나가지 않도록 사기 진작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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