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S외국어학원. 한반에 1∼6명의 중고생이 영어와 토플 미국사 수학 등을 영어로 수업하고 있다.
‘초트반’이라는 낯선 이름은 미국 동부의 명문사립고교인 초트로즈메리홀고교 입학을 겨냥한 반이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출신 학교인데다 몇 년 전 유학체험기 ‘7막7장’을 써내 유명해진 홍정욱씨 등 한국인 출신이 많고 ‘한국인 어머니회’가 국내에 조직돼 있어 학부모들 사이에 지명도가 높은 학교.
▼"명문大 진학 보장" 소문▼
이처럼 미국 명문사립고교 진학을 위한 입시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학원이 최근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 일산 신도시 등에 속속 생겨나 조기유학 바람이 과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학원 원장 P씨(45)는 “초트로즈메리홀고교를 나오면 브라운대는 따논 당상이고 뉴햄프셔주의 필립 엑스터 아카데미나 보스턴의 페이스쿨졸업자는 하버드대 합격률이 높다는 식의 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 돌고 있어 올초부터 개별고교별 진학반을 두고 수업 중”이라고 밝혔다.
역시 ‘쵸트반’을 특화시키고 있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또 다른 S어학원엔 지난해말 겨울방학을 맞아 귀국한 초중생 조기유학생들이 미 명문고 입시 과외를 받기 위해 몰려들기도 했다. 아직 학생들의 영어가 짧기 때문에 한국에서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미 사립고교 입학검정시험(SSAT)을 준비시켜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극성 탓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Y어학원 영어강사 박현신(朴賢信·26)씨는 “서울 강남과 신도시의 몇몇 학원들은 미국의 명문 사립고를 졸업한 젊은 한인강사들을 상대로 스카우트 경쟁까지 펴고 있다”고 전했다. 학원으로서는 “아무래도 졸업생이 특별한 입학 요령을 가르쳐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학부모들의 기대감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週3회 개인교습 月100만원▼
이들 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어와 토플, SSAT대비를 위한 미국사 수학 등 3∼5과목. 주3회 하루 3시간 수업에 1명 개인교습일 경우 월 100만원을, 5,6명 소그룹의 경우 2달에 40만∼50만원을 받는다.
학부모 조수열(曺洙閱·48·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한국의 일반 학원비에 비해 크게 비싼 편도 아니며 이 정도 투자로 미국 명문고에 입학시킬 수 있다면 밀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600점 이상의 토플성적과 1300점 이상의 SSAT성적(1600점 만점)을 요구하는 미국의 명문사립고교들은 연간 한국입학생들을 서너명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보통. 그러나 명문대 진학을 바라보는 한국인 지원자들이 몰려 1∼2월 2000학년 9월학기 지원생을 받은 모 사립고교의 경우 한국인 지원자 수가 200명에 육박했다고 학원 관계자들은 전했다.
미국 내의 고교 입학을 위한 이같은 과외가 위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서울 강남교육구청 사회교육체육과의 한 관계자는 “역사나 수학 등 기초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어학원이 관내에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두 ‘영어’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법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기 자격완비 웃음거리"▼
그러나 미국 내의 ‘우수고교 진학이 곧 우수대학 진학’으로 간주하고 이를 위해 집중학습을 해야 한다는 데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신동희(申東熹)박사는 “엄격한 기숙사생활과 학생지도를 하는 사립고교들은 교육환경이 공립학교보다 나을 수 있다”며 그러나 대학진학에는 내신성적과 수능시험(SAT), 다양한 활동 등이 반영되므로 명문고교와 명문대 진학은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미국의 특정 사립고교를 목표로 과학고반 외국어고반 같은 ‘한국식 입시반’을 만들어 단기간에 자격을 갖추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고 신박사는 지적했다.
대원외국어고교 이경만(李慶晩·41)국제교류부장도 “특화된 서비스를 원하는 학부모의 과잉교육열과 이에 맞장구치는 학원의 상술이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교진학의 첫번째 조건은 우수한 내신성적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