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못할 '의사남편'…아내 重病들자 10억 가로채

  • 입력 2000년 4월 22일 10시 22분


명문대 출신의 치과의사가 결혼 후 자신을 뒷바라지해 온 부인이 중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자 10억원대에 이르는 아내의 재산을 가로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준규·金畯圭)는 21일 치과의사 L씨(42)에 대해 사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S대를 졸업한 L씨가 부인(43)과 결혼한 것은 90년. 지방 출신인 L씨는 같은 대학출신으로 가정형편이 넉넉한 부인과 결혼한 뒤 수도권에 병원을 차렸다. 개업비용은 부인이 교사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과 처가에서 부동산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불경기에 의료사고까지 겹치자 L씨는 병원문을 닫고 처가에서 돈을 얻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한 L씨는 96년 부인이 뇌 수술을 받은 뒤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한달이 지나지 않아 인감도장을 위조해 부인 이름의 아파트와 부부 공동명의의 3층 건물 등 10억원대의 재산을 몰래 처분했다. L씨는 처분한 돈으로 서울 강남구에 7억원대의 70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L씨는 부인이 6개월째 입원해 있자 “어차피 치료가 불가능하니 기도원에 보내자”고 해 결국 부인은 병원에서 쫓기듯 나와 친정에서 70대 노모의 간호를 받으며 투병생활을 했다.

남편이 재산을 빼돌린 것을 부인이 알아챈 것은 97년. 친정 식구들은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같은 해 12월 L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부인이 수술 후유증으로 의식이 불분명한 데다 말을 제대로 못하고 시력까지 잃는 바람에 수사는 2년 넘도록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올 초부터 부인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검찰이 부인을 상대로 본격적인 조사를 하면서 L씨의 범죄행각은 3년 8개월만에 꼬리가 잡혔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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