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大 고교등급화 추진 내용-파장]

  • 입력 2000년 4월 26일 18시 57분


《2002학년도 입시부터 고교 내신성적을 각 대학이 독자적인 기준을 갖고 평가하는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고교의 수준차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고교 등급화’로 해석되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7개 대학은 25일 연세대에서 교무처장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본보 1월31일자 A31면 참조). 그러나 평가 방식 및 요소가 각 대학별로 크게 달라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고교 줄세우기’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학의 평가 방식과 방침, 고교 평준화 정책과의 충돌여부, 각 고교와 학생 학부모의 반응 등을 종합해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대학이 내신 재평가…공정성 논란▼

주요 대학이 2002학년도부터 시행할 예정인 ‘고교 등급화’는 겉으로 드러난 점수만으로 수험생을 선발하는 전형이 아닌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교 등급화는 대학이 고교의 현실적인 학력차를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각 고교의 내신성적을 자체 기준에 의해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평가는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기 때문에 ‘고교 등급화’는 입학관리능력이 있는 소수의 대학에서만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고교 등급화는 이미 시험적으로 몇몇 대학이 시행했으며 그 폭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2000학년도 입시 전형에서 수시모집에 한해 ‘고교 등급화’를 시행했다.

그러나 ‘고교 등급화’가 미칠 파장 때문에 이들 대학은 비공개로 고교 등급화에 대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일각에선 고교등급화가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대학별 움직임]

▽서울대〓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고교별 학력차를 자체 측정해 내부 전형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입장. 서울대 입시 관계자는 “고교별로 수험생의 수능 성적 분포도와 교과과정 등 각종 자료로 학력차를 측정하고 해당 고교 졸업생의 대학입학 뒤 학업성취도나 이들의 수능성적 등은 이를 검증하는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기초조사팀 등 8개 연구팀 50여명이 구체적 시행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올해 고교장추천 전형시 1, 2개 고교를 대상으로 모의 전형을 실시해 유효성을 실험할 계획이다.

▽고려대〓2000학년도 수시모집에서 고교 등급화를 처음 적용했으며 2002학년도에는 이를 정시모집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 몇 년간 고교별 입학생 수와 이들의 대학성적, 고교의 수능 성적 등의 자료를 축적했다. 이와 함께 각 고교의 교육이념과 설립 취지 등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 고려대 입시관계자는 “졸업생의 성적에 따라 재학생을 평가하는 것에 논란이 있으나 고교별 학력차가 큰 것이 현실”이라며 “5개팀 50여명이 구체적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연세대 입시 관계자는 “고교별 특성을 반영하는 전형양식을 각 대학이 통일시키자는 것을 논의했다”면서 “고교를 서열화 등급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장기적으로 고교별 특성에 관한 자료가 축적되고 신뢰도가 쌓이면 고교별 특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고교 등급화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세대는 올해 15명의 아카데미 컨설턴트를 일선 고교에 파견해 고교의 교육실태를 조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고교 등급화의 자료를 충실히 모으고 있으며 1999학년도부터 수시모집에서 고교 등급화를 적용했었다.

▽이화여대〓이화여대는 등급화를 통해 고교를 차별하는 것은 평준화시책에 어긋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아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서강대〓서강대는 전국 고교를 상대로 고교 등급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서강대는 우선 고고별로 입학생 현황 및 학업성취도 등의 자료를 모으고 있다.

▽한양대〓고교 등급화는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고교의 특성을 평가해 반영할 수 있는 정도로 고교별 자료가 모이면 이를 통일된 양식으로 만들어 대학간에 공유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위헌성 논란]

대부분의 학생이 고교 평준화시책으로 고교 선택권이 없이 고교에 강제로 배정되고 공립학교 교원들도 순환 보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을 고교별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이 졸업생의 성적이나 대학 입학 실적에 따라 재학생을 평가하고 진학 기회를 제약하는 것은 헌법의 교육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고교 등급화를 시행할 예정인 대학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일선고교 엇갈린 반응▼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이 2002학년도 입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고교별 수준차를 인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자 일선 고교와 학부모들은 환영과 우려가 엇갈렸다.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와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고교간 학력차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인 반면 일반 고교는 “고교 입시를 과열시키는 등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반응이었다.

서울 경복고 김상일(金相一)교감은 “각 대학이 고교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궁금하다”며 “지역별, 학교별로 갈등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인 경기 부천고 서헌(徐憲)교감은 “우리 학교의 열등생도 다른 학교에 가면 우등생”이라며 “더욱이 고교마다 내신성적 부풀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고교의 우열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하다”고 말했다.

일선 교사와 학부모들은 각 고교의 특성화 교육프로그램을 전형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발표에 대해서는 대부분 불신을 나타냈다.

서울시내 한 고교 교사는 “취지는 좋지만 현행 고교 교과과정이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상황에서 결국은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 학생들만 유리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1 자녀를 둔 김모씨(44·서울 송파구 가락동)는 “외국어 계열학과에서 외국어고 학생을, 이공계열에서 과학고 학생을 우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관련이 없는 학과에서도 특성화 프로그램을 반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고교별 등급제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내년부터 당장 시행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의 한 특목고 교사는 “고교 등급제가 실시되면 우리학교 학생들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역별로 비평준화와 평준화가 상존하고 있고 학교별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면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성철·박윤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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