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문은 지난해 11월19일자 ‘100년의 뒤안길에서…’라는 역사에세이에서 일본 왕과 왕세자를 폭살하려 했던 ‘박열(朴烈)사건’을 소개하면서 ‘박열을 고자질한 것은 김중한과 그의 일본인 애인이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김중한씨의 귀국 소식을 전한 당시 신문기사를 근거로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했다. 27년 2월25일자 동아일보는 ‘박열 열사 사건의 공범으로 동경공소원(법원)에서 징역 1년반의 판결을 받았으나 실제로 4년을 복역한 김중한씨가 옥중에서 시달려 몰골이 초췌한 모습으로 서울에 왔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에도 ‘박열 열사 사건 공범 김중한씨, 만 삼개년의 긴 세월 동안 철창생활을 하다 만기출옥해 입경(入京)’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김씨는 “숙부는 만주에서 지하 독립운동하다가 28세 때인 29년 실종됐고 미혼이어서 자손도 없다”며 “가문의 자랑인 숙부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김씨의 항의를 받아들여 1월8일자에 ‘김중한이 박열 사건의 밀고자라고 기재한 바 있으나 사실확인 결과 그러한 사실이 없으며 특히 김중한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을 위하여 분골쇄신한 애국자였음이 밝혀져 바로잡습니다’는 정정보도를 실었다.
이고문측은 “김씨가 ‘정정보도문만 실어주면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고 해서 그대로 해줬는데도 김씨가 뒤늦게 민형사 소송까지 낸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