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샐러리맨 밤엔 벤처맨 '투 잡 族' 뜬다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0분


‘낮에는 샐러리맨, 밤에는 벤처맨.’

L씨는 대기업 H사의 재무팀 대리. 올해 32세. 그는 요즘 하루에 두 번 출근한다. 오전 8시엔 서울 강북 중심가에 있는 본사 건물로 출근하고 여기서 ‘낮일’을 마치면 무조건 강남으로 달려간다.

▼벤처열풍 주춤해진뒤 확산▼

인터넷 전자상거래업체인 L사로 ‘두번째 출근’을 하기 위해서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다 두달 전 벤처기업을 차린 선배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사표를 내는 대신 두 직장을 동시에 갖기로 한 것.

코스닥주가가 폭락을 거듭하면서 벤처 열풍이 주춤해지자 기존 직장과 벤처기업 양쪽에 적을 두고 번갈아가며 일하는 이른바 ‘투잡(Two Job)족’이 새로운 직업 패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앞날이 불확실한 벤처기업에 대한 안전판을 유지하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벤처의 가능성도 동시에 추구하려는 직장인들의 경향을 반영한 것.

이들은 보통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하면서 일과 이후의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벤처기업에서 시간을 보내며 웹프로그래밍 등 핵심적인 일에서부터 마케팅과 재무 회계 등 꼭 필요하지만 전문인력을 구하기 힘든 분야을 특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정직장-도전 '이중생활'▼

단순히 일을 배워보려는 아르바이트 근무자에서부터 예비 창업자에 이르기까지 참여의 형태도 다양하며 따라서 이들이 받는 보수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대부분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고심하다 가족과 주변의 만류로 기존 직장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이중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부투자기관에 다니는 C씨(30) 역시 인터넷 기업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기업을 공동창업해 투잡족 대열에 합류했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벤처에서 마음껏 일해보고 싶었지만 “신기루 같은 벤처 열풍에 휘말려 안정된 직장을 버려선 안된다”는 가족들의 만류로 결국 양다리를 걸치게 된 것.

C씨는 “하루에 4, 5시간밖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몸은 좀 고달프지만 안정적인 직장과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어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두고봐야겠다”고 말했다.

▼"본업 소홀" 부정적 시각도▼

벤처기업에 인력을 소개해주는 인재파견업체에도 전업을 원하는 구직자보다 파트타임을 원하는 이들의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인재파견업체인 ‘제니엘’의 고은희과장은 “최근 IT분야의 경우 20∼30%가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남는 시간에 일하려는 직장인들의 구직의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벤처기업의 경우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지만 막상 규모도 영세하고 근무여건도 열악한 기업여건을 직접 본 뒤 실망하고 이직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투잡족의 등장은 처음부터 높은 보수를 주고 풀타임으로 경력사원을 고용하기 힘든 벤처기업의 이해와도 맞닿아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전자상거래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35)는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벤처기업일수록 처음부터 일해 본 사람이 필요하지만 막상 경험있는 사원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회사와 학교 선후배에게 ‘시간이 남으면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투잡족의 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두가지 일을 하다 보면 어느 한 쪽의 일에만 몰두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본업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윤철기자> 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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