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DIGITAL]두개의 '한국통신'…소비자 피해 우려

  • 입력 2000년 5월 3일 20시 32분


‘주식시장에는 한국통신이 두 개.’

회사원 A씨는 최근 전화로 한국통신 주식 500주를 사달라고 주문했다. 코스닥시장이 불안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형 우량주를 사두려 했던 것. 그러나 얼마뒤 A씨가 받아든 보유주식 목록에는 의도했던 거래소 시장에 상장된 한국통신(한국전기통신공사)이 아닌 코스닥에 등록된 중소기업 ‘한국통신 주식회사’가 올라있었다. 증권사 직원이 A씨가 코스닥 종목인 한국통신 주식 매입을 희망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

이처럼 투자자들은 앞으로 매입주문을 낼 때 ‘거래소 한국통신’인지 ‘코스닥 한국통신’ 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회사이름을 놓고 두 회사가 벌인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법원이 골리앗의 손을 들어줘 두 개의 한국통신이 공존하게 됐기 때문이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합의1부(재판장 박찬·朴燦 부장판사)는 4월 28일 ‘한국통신 주식회사(KOCOM)’가 ‘주식회사 한국통신(KT·Korea Telecom)’을 상대로 상호(商號)사용을 금지시켜 달라며 낸 소송에서 “KT는 회사이름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KOCOM은 비디오폰 폐쇄회로TV 등 정보통신관련 장비를 만드는 중소 제조업체. 80년 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 ‘한국통신’이라는 상호를 사용해온 이 회사는 공기업인 KT가 90년 이후 한국통신이라는 약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공룡 한국통신’이 우월한 지위와 자금력을 동원해 20년 이상 한국통신이라는 이름을 써 온 중소기업의 재산권을 약탈하고 있다”며 반발해왔다.

두 회사의 해묵은 다툼은 KT가 본점을 경기 성남시 분당구로 옮긴 뒤 지난해 5월 ‘주식회사 한국통신’으로 성남시에 가등기하면서 법정으로 옮겨갔다. KOCOM은 ‘동일한 영업을 하는 두 기업이 같은 지역에 등기할 수 없다’는 상법 규정을 근거로 소송을 냈다. KOCOM은 97년 성남에 지점을 내고 이미 등록을 마친 상태.

재판부는 그러나 “KOCOM의 주된 사업분야는 통신장비 제조업 등으로 통신 서비스를 주력 업종으로 하는 KT와 동일 업종으로 보기 어렵다”며 ‘꼬마 한국통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한국통신’이 ‘너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소비자나 투자자를 혼동시키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일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두개의 한국통신의 기업규모와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으로 볼 때 KT가 90년대 이후 광고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으므로 회사 이름이 같기 때문에 상품 및 영업상의 혼동을 초래할 염려가 없다고 본다”고 한 것이다.

박성호(朴成浩)변호사는 “소비자가 한국통신을 인지하는데 거래소 한국통신이 99% 이상을 기여했고 실질적인 영업수행을 하는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상법 정신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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