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사업비리의혹]린다金-고위층 '숨은 거래'없었나

  • 입력 2000년 5월 5일 20시 03분


《군 당국이 91년부터 정보자주화를 위해 추진해 온 백두사업은 어떻게 결정됐을까. 기종 결정에 린다 김의 정관계 고위인사가 도움을 줬을까. 린다 김과 정관계 고위인사의 편지가 공개된 뒤 이런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린다 김과 백두사업에 관련된 의문점과 궁금점을 짚어본다.》

▽린다 김과 정관계 인사들은 어떤 관계인가〓백두사업의 장비납품 업체로 선정된 미국 E시스템사의 로비스트인 린다 김이 이양호(李養鎬)전국방부장관 등 정관계 고위인사들과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들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전장관은 96년 4월 린다 김에게 ‘사랑하는 린다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L’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린다 김은 이에 앞서 88년부터 한국의 정관계 인사들을 차례로 만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중에서도 이전장관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국방부 장관이었고 편지를 보낸 시기가 정종택(鄭宗澤) 당시 환경부 장관의 소개로 린다 김을 만난 지 한달 만이었으며 백두사업 기종결정을 2개월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에는 ‘지난번 말한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니까 회사측에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린다의 역할을 부각시켜요’라는 대목도 나오는데 이들이 군 관련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느냐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전장관은 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고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서 보낸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스캔들로 얽혀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은) 사실과 달리 보도됐다”고 밝혔다. 린다 김은 물론 그녀와 만난 정관계 인사들도 한결같이 사적인 편지가 공개되고 특히 개인적 만남을 ‘부적절한 관계’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로비과정에 금품수수와 군사기밀 누출은 없었나〓린다 김이 96년부터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및 백두사업과 관련해서 국내 관계자를 대상으로 로비했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로비 자체를 불법으로 단정짓긴 곤란하다.

국내에서는 로비가 뇌물과 향응제공, 또는 불법적 군사기밀 탐지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만 미국은 로비를개인 단체 집단의 이익을 위한 합법적 활동으로 간주하며 로비스트도 정식 등록을 한다.

문제는 린다 김의 로비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느냐는 점인데 지금까지의 관계 기관 조사를 종합해 보면 그녀가 정관계 고위인사에게 금품을 뿌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국내에 은행계좌를 개설한 96년 6월부터 98년 8월 사이를 대상으로 그녀와 이전장관, 황명수(黃明秀)당시 국회 국방위원장 등 63명의 계좌를 기무사가 추적했으나 이들간의 입출금 기록이 나타나지 않은 것.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전장관 등이 린다 김을 만난 96년 6월 이전의 기간이 추적대상에서 빠져 의혹이 여전히 남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백두사업 기종결정은 문제가 없었나〓린다 김과 이전장관 등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가장 먼저 제기된 의문은 이들의 관계가 백두사업 기종결정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점이다. 이전장관이 보낸 편지에는 군 관련 사업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어 이런 의혹을 갖게 한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린다 김이 설사 로비를 벌였더라도 거기에 영향을 받아 백두사업 기종이 미국 E시스템사 장비로 결정된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업추진 초기인 91년부터 이미 미국 장비를 들여오기로 군 수뇌부에서 정책적 판단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린다 김이 96년에 뛰어들어 로비를 벌이고 여기에 이전장관 등이 도움을 줘서 결정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기무사는 제대로 활동했나〓기무사가 린다 김의 국내활동에 주목한 건 96년 3월부터이다.

당시 기무사는 린다 김이 동부전선 전자전 사업을 위해 국방부 고위층의 지원을 받는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며 2개월 뒤에도 같은 첩보를 포착했다. 기무사는 내사를 벌여 해외평가팀이 린다 김의 소속 회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기무사는 96년 7월31일 이런 내용을 당시 이장관에게 보고하고 5명을 징계토록 했는데 기무사 첩보와 내사결과엔 백두사업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백두사업이 로비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게 기무사의 해명인데 린다 김이 활동하던 당시는 백두사업 기종결정을 2, 3개월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기무사가 당연히 체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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