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동지역에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간지 한 달. 4, 5일 이틀동안 다시 찾아본 산불피해 현장은 여전히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한달전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던 ‘죽은 땅’은 아니었다. 경이로운 자연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태계 변화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 해발 200m의 야산. 불에 탄 싸리나무 밑동에서 새싹(맹아)이 돋아났다. 그늘사초 참억새 큰까치수염 등은 20㎝까지 자란 것도 있었다. 애기나리 군락과 고사리도 눈에 띄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난 아무르장지뱀도 보였다. 이따금 어치 까치 등 새들도 날아와 옛 둥지를 찾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배회했다. 돌을 들어보니 개미도 우글댔다.
취재진과 함께 산불 피해 현장을 둘러본 강릉대 이규송(李奎松·35·식물생태학)교수는 “한달도 안돼 이처럼 새순이 돋아나는 것은 자연복원력이 그만큼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시 사천면 노동하리의 시냇가는 생태계 복원 속도가 더 빨랐다. 시커먼 재로 뒤덮인 늪지에서는 여러 종류의 풀들이 돋아났다.
쇠뜨기와 달뿌리풀이 보였고 병꽃나무와 국수나무에선 새순이 돋아났다.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 운봉산. 곳곳에서 산오이풀 우산나물 맑은대쑥 등이 눈에 띄었고 시냇가에선 고라니 발자국도 보였다.
이곳에선 특히 고사리가 많이 눈에 띄었다. 이교수는 “나무재로 인해 영양분이 풍부해진 데다 고사리의 생존본능도 전에 없이 강렬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태계 복원은 참나무 등 산불에 강한 수림대가 형성됐던 곳에서 한결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불에 약한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림이 밀집했던 곳의 복원 속도는 상대적으로 늦었다.
특히 소나무만 키우기 위해 활엽수와 잡목을 베어냈던 강릉시 사천면 일부 지역과 96년에 이어 두차례 산불 피해를 당한 고성군 토성면 삼포리 일대는 잡초도 돋아나지 않았고 개미도 보기 어려웠다. 이 지역은 또 화염으로 인해 수분이 증발된데다 토양의 점착력이 떨어져 앞으로 토사의 유출도 심각할 것으로 지적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 피해현장에서는 앞으로 1년 동안 ㏊당 평균 1.7∼3.4t의 토사가 유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강릉=경인수/동아일보기자 sunghy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