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전세대란, 'IMF세입자들' 인상분 마련못해 한숨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59분


김모씨(43·여·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는 요즘 걱정이 태산 같다. 임대차계약기간이 끝나 이달 말까지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하지만 큰 폭의 전세금 변동으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

2년 전인 98년 5월 김씨는 50평형 아파트에 5000만원의 전세금으로 입주할 수 있었다. IMF관리체제 여파로 중대형 평수를 중심으로 전세금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 당시 매월 20여만원의 관리비가 적지 않은 부담이 됐으나 32평형의 전세금과 수백만원 차이밖에 나지 않아 김씨는 결국 이 아파트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전세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최근 이 아파트의 전세금도 1억2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주인은 몇 달 전부터 “시세대로 돈을 맞춰주지 못하면 다른 데를 알아 보라”고 말하지만 김씨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 작은 평수로 옮기려 해도 인근 24평형 아파트의 전세금이 6500만원선이어서 부담이 적지 않다. 김씨는 “그동안 시부모와 두 자녀 등 여섯 식구가 널찍하게 살았는데 작은 평수로 이사하려니 눈앞이 캄캄하다”며 “20평형대 아파트로 옮기려면 2년간 조금씩 장만했던 세간살이를 모두 내다 팔아야 할 판”이라고 한숨지었다. 최근 김씨와 같은 고민에 빠진 세입자가 많다. IMF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쳤던 98년 5∼7월 체결됐던 전세 계약의 만기가 차례로 도래하고 있기 때문.

실제로 부동산정보서비스업체인 부동산114의 조사에 따르면 98년 5월 대비 서울지역 전체 아파트 전세금 변동률은 47.6%. 그러나 강남지역의 전세금 상승률은 55∼60%, 수도권 신도시지역의 상승률은 72∼88%선에 이르렀다.

아파트에 따라 전세금이 100% 이상 오른 곳도 적지 않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현대아파트 43평형의 경우 전세금이 2년 만에 7200만원에서 1억7000만원으로 136% 상승했고 강남구 수서동의 한아름아파트 37평형은 8750만원에서 1억7500만원으로 두배나 뛰었다. 고양시 일산구 강촌마을 한신아파트 35평형의 전세금도 4200만원에서 9500만원으로 급상승했다.

이 같은 전세금의 급상승으로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마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공인중개사무소 윤화연(尹和然·42)씨는 “최근 그대로 눌러앉으려는 세입자와 시세대로 제값을 받으려는 집주인간의 싸움이 잦아졌다”며 “IMF때 은행빚까지 져가며 세입자들에게 돈을 돌려줬던 집주인들이 이번에 ‘복수’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씨처럼 ‘하향이동’하는 세입자가 크게 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소형아파트의 전세금이 크게 뛰고 연립주택과 원룸마저 동난 상태. 최근에는 소형 아파트를 주로 찾는 신혼부부들의 수요까지 겹쳐 전세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동산114 김혜현대리(31)는 “방학 이사철과 겹치는 7∼8월에는 전세난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며 “집주인과 기존 세입자간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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