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그 아름다운 삶]서울 '장애우직업센터'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대화를 나누는 시간 내내 그는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건 야무지게 처리할 것 같은 그의 얼굴. 높은 톤의 웃음. 지체장애 2급 2호, 즉 양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그가 스스로 밝히지 않았다면 겉모습에서 장애인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우직업센터의 김태웅(金泰雄·39)간사.

그가 일하는 장애우직업센터(02-521-5365)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장애인 실직자모임터’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멀쩡한 일반인도 우수수 해직되던 시절. 장애인의 고통은 남달랐다. 일반인을 위한 실직자 모임터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장애인들은 어디 가서 쉴 곳조차 없었다. 98년10월 생긴 이 모임터는 장애인들에게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 뒤 1200여명의 장애인이 이 모임터를 이용했다. 누계로 치면 2만여명. 지난해 단순한 모임터에서 벗어나 장애인 취업알선을 위한 직업센터로 재출범했다.

▼98년 IMF때 모임터로 출발 컴퓨터 교육 50여명 취직알선▼

김간사를 비롯한 4명의 실무자들은 늘 바쁘다. 전화 및 방문상담은 물론 각종 직업교육 등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 24시간도 빠듯하다.

직업센터의 일은 밖에서 보기보다 무척 다양하다. 우선 실직가정 지원업무. 생활보호대상자와 공공근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가구당 30만원의 최저생계비를 지원하는 것.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만만찮다.

김간사가 요즘 역점을 두는 일은 장애우 직업교육과 직영사업장을 만드는 것. “장애인들이 IMF 이전엔 액세서리 전자부품 등을 조립하는 일에 많이 종사했지요. IMF를 거치며 이런 업종마저 임금이 싼 중국으로 넘어가 취직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어요.”

김간사와 직업센터는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도 손만 쓸 수 있다면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컴퓨터 10대로 직업교육을 시작했다. 컴퓨터가 모자라 이론교육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아 가슴 아팠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발이 닳도록 이곳저곳 뛰어 컴퓨터를 기증받았다. 비록 486급이 많지만 컴퓨터는 70대로 늘어났다.

“아쉬운 대로 쓸만해요. 인터넷 전용선이라도 연결되면 더 좋겠지만….”

이같은 노력이 차츰 결실을 거두고 있다. 최근 광고에도 나오듯 대한항공 예약 파트에 입사해 재택근무중인 홍수정씨 등 50명의 장애인이 이곳을 거쳐 취업했다.

그러나 사회의 편견은 여전하다. “장애인이니 특별 채용해 달라는게 아니라 장애와 상관없이 이런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니 채용해 달라고 해도 무조건 안된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최근엔 직영사업장을 만들고 있다. 일반인의 편견이 심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위한 특별사업장이다. 지하철 유실물중 쓸만한 것을 넘겨받아 수선해 되파는 재활용 사업장과 세차장도 곧 문을 연다.

▼정신지체인 위한 사업장도 추진 "동정보단 똑같은 사람대우를"▼

김간사의 월급은 70만원선. 이는 그가 장애인 취업을 위해 기업으로, 공단으로, 구청으로, 정부기관으로 뛰어다니는 교통비로도 부족한 수준. 그러나 98년 실직자모임터 직원을 공채할 때 과감히 응시했다.

“언젠가는 장애인을 위한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기회가 주어진 거죠. 장애인이라서 취업이 안되는 것은 설움이 아니고 절망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얘기는 오직 한가지였다. “장애인도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온정도 동정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일반인과 별 다름없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할 장소만 마련해주면 됩니다. 손잡고 함께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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