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권화폐 사기사건 베일 벗나]주범규명이 숙제

  • 입력 2000년 5월 17일 20시 03분


'구권화폐 연쇄 사기극의 '주연'은 과연 장영자인가?' '수천억원대 구권화폐의 실체는 과연 있는가?'

구권화폐 연쇄 사기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도피 중이던 장영자(張玲子·55)씨가 17일 검찰에 검거됨에 따라 사기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수사가 급진전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장씨를 비롯해 이미 구속된 피의자들을 상대로 그간의 혐의사실에 대해 면밀한 확인작업을 벌이는 한편 천문학적 규모의 구권화폐의 실재(實在) 여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장씨-윤모씨 '주역' 결론▼

▽주범은 누구인가〓검찰은 일단 이번 사건이 장씨와 공범인 윤모씨(41·여·구속)가 '주역'을 맡아 실체도 없는 구권화폐를 '미끼'로 은행지점장, 사채업자 등을 상대로 벌인 연쇄 사기극으로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

그러나 '구정권이 보유한 거액의 구권화폐가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뒤 사채업자들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최근 경찰에 검거된 김모씨(35) 등의 진술은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 등은 지난해 12월 장씨에게 접근해 "구권화폐를 70% 할인해주겠다"고 속여 21억원을 가로챘던 것.

이와 함께 장씨는 이들 사기단의 '농간'에 속아 중간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은행지점장 등을 상대로 또다른 사기행각을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기극의 전모〓검찰조사 결과 지금까지 장씨 등이 연루된 연쇄 사기사건의 규모는 143억원대. 장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3개은행 4개지점의 은행관계자들을 상대로 "구권화폐를 50∼75%의 가격에 넘겨주겠다"고 속여 차명계좌를 통해 20∼48억원 상당의 거액을 갈취한 혐의로 수배됐었다.

그러나 장씨가 지난해말 김씨 등 다른 구권화폐 사기조직에 같은 수법으로 21억원을 사기당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결국 실체가 애매한 거액의 구권화폐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은행지점장과 사채업자, 사기조직 사이의 물고 물리는 연쇄 사기극의 '모양새'로 정리되고 있다.

▼"수천억원대 존재" 낭설▼

▽구권화폐의 실재 여부〓이 사건의 핵심인 94년 이전 발행된 수천억원대의 1만원권 구권화폐의 실재 여부에 대해 검찰은 '유언비어'라고 일축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말부터 사채업자들로부터 시중은행에 "웃돈을 붙여 수십억대의 구권화폐를 주겠다"는 제의가 줄을 이었다는 정보를 입수, 사실 여부를 확인했으나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실제로 구권화폐를 봤다는 목격자도 확보되지 않아 실체파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검찰관계자는 "지난해말 사채시장에도 30% 가량 할인된 가격에 매입 가능한 3000억원대의 구권화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역시 근거없는 낭설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풀어야 할 의혹〓지금까지 드러난 실제 피해액은 26억원. 장씨가 사채업자 하모씨(38·구속)에게 가로챈 21억원과 윤씨가 S은행 서모지점장(45)에게 가로채 정모씨(41)에게 넘긴 5억원이다.

143억에 달하는 사기액 중 나머지 수표들은 모두 지급 정지로 무용지물이 된 것. 거액의 선수표를 받고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실익'이 없는 장씨가 왜 같은 행위를 반복했는지, 최종 목표는 무엇이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범행 최종목표 아직 미궁▼

이밖에 장씨의 집에서 발견된 거액의 국내외 채권의 진위와 입수경위, 장씨 등이 범행과정에서 배경으로 거명한 정계 고위층과의 연관성 등도 밝혀야 할 숙제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구권화폐 사기사건은…▼

'큰 손' 장영자(張玲子·55)씨를 비롯, 7명의 은행지점장과 사채업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며 시중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구권화폐 사기사건의 '진원지'는 94년 이전 발행된 1만원권 지폐.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신권과 달리 은빛 세로선이 없지만 법적으로는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장씨 등 사기조직이 수천억원대의 구권을 교환하지 못하고 '검은 돈'으로 숨겨둔 장본인이라며 구정권의 실력자들을 거명해 연쇄사기행각을 벌인 것.

장씨 등은 "93년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계좌추적을 우려해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구권으로 보유중인 구정권의 '몸통'을 잘 알고 있다"며 "이를 50∼75%의 가격에 넘겨주겠다"고 속여 143억원대의 금품을 사취했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천문학적 규모의 구권 실재(實在) 여부에 대해서 전혀 근거가 없으며 사기꾼들의 농간이라고 일축. 수사관계자들은 그간의 수사과정에서 단 한 장의 구권화폐도 발견되지 않은 점을 들어 사기조직이 범행을 위해 사채시장 등에 퍼뜨린 소문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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