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이 사라진다…경기만-목포 모래 마구 퍼내

  • 입력 2000년 5월 23일 19시 29분


인천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 이장 임윤직(林允直·64)씨는 이일레해수욕장 백사장만 보면 화가 치민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래가 매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준설선이 해사(海沙)를 채취하는 바람에 백사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채취 허가를 내주지 말아 달라고 옹진군에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인천 중구 무의도 실미해수욕장에 사는 차석교(車錫校·52)씨는 96년 집 앞 해변에 높이 6m, 길이 340m의 축대를 쌓았다. 해수욕장 앞 백사장 모래가 15∼16년 전부터 계속 줄어 해변의 경관이 너무 볼품없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할 중구청에서 이 축대가 불법 형질 변경행위라고 단속하자 차씨는 1년 만에 석축을 모두 헐어야 했다.

▼모래채취▼

인천과 경기도의 앞 바다인 경기만에서 퍼내는 바다 모래는 한 해 평균 1500만㎥. 이는 15t 덤프 트럭 150만대 분량.

인천 옹진군에서 허가받은 17개 업체가 이작-승봉도 남서쪽 해역 등 20여 곳의 광구에서 모래를 퍼 올리고 있다. 이는 전국 바다 모래 채취량의 40%선.

전남 신안 목포 앞 바다와 충남 서산 당진 앞 바다도 모래를 많이 채취하는 지역.

전국의 올해 해사 채취 계획량은 3700만㎥이며, 이 중 올 1·4분기 전국의 해사 채취량은 520만㎥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0만㎥보다 100만㎥ 가량 늘어났다.

▼바다생태계 파괴▼

이 때문에 바다의 생태계도 크게 훼손돼 어족이 줄어들고 있다.

경기만을 산란장으로 삼던 조기와 민어 등이 자취를 감춘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꽃게 피조개 전복 등도 머지않아 같은 처지가 될 형편이다.

국립수산진흥원 서해수산연구소 박경수(朴慶洙·38)박사는 “환경영향평가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모래 광구 주변 바다에는 모래를 퍼 올릴 때 생기는 부유물질이 생물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래 채취는 소규모라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 대상에도 들어있지 않아 무분별한 채취를 막기 어려운 형편.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에는 채취면적이 25만㎡ 이상이거나 채취량이 100만㎥ 이상인 경우에만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 해 동안 퍼 올린 해사채취 총량을 따져 환경영향평가가 당연히 실시돼야 하나 채취업체는 소규모로 자주 허가를 받으면서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시군구의 입장▼

각 시 군 구가 환경파괴를 무릅쓰면서도 해사 채취 허가를 계속 내주는 것은 세외수입이 워낙 크기 때문.

올 한 해만 해도 옹진군은 해사채취와 관련한 공유수면 점용 사용료(㎥당 730원) 명목으로 109억여원의 세외수입을 예상하고 있다. 옹진군은 84년부터 16년 동안 해사 채취업자에게 매년 1200만∼1600만㎥의 해사 채취를 허가해주었다.

▼대책▼

해양전문가들은 골재 수급 문제가 심각하고 세외수입이 많다고 해도 중장기적으로 더 이상의 무분별한 해사채취와 해양환경 파괴는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천 해양수산청의 한 관계자는 “광구별 휴식년제 도입이나 쿼터제 등을 통해 해양자원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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