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강원산불 50일 르포 "싹트는 새순"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34분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현장. 타들어간 나무등걸 사이에 파릇파릇한 새순이 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라고 말하기엔 애처로울 만큼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 산불이 강원의 힘줄 오대산을 휩쓴지 50일. 산림청을 비롯, 환경부 강원도 그리고 백두대간 새생명 시민연대 139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은 피해지역을 찾아 두달간의 생태조사에 들어갔다. ‘백두대간 살리기’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동아일보는 조사단을 동행, 조사현장을 지켜봤다.

▽생명의 새싹〓1015㏊가 불탄 강원 강릉시 사천면 오대산 자락에는 시커멓게 타들어간 소나무숲 사이로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류의 새순들이 30∼50㎝씩 군데군데 돋아났다. 참나무는 소나무보다 불에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어 비교적 일찍 ‘재활’을 시작한 것.

적갈색으로 죽어버린 소나무가지에도 파란 새순이 돋아 생명의 경외를 느끼게 했다. 피해가 비교적 덜한 산마루에는 마타리 뚝갈 등 목근류가 돋아났다. 하지만 검게 변해버린 땅에는 두더지굴 개미집이 흔적만 남기고 있을 뿐 기어다니는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생육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산림청 임업연구원 임종환(林鍾煥)박사는 “유기물을 함유한 토양이 이미 타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토양상태는 가장 아래쪽의 바위가 부스러져 있는 수준에 가깝다는 설명. 게다가 새순이 돋아났다고 해도 땅밑에 박힌 나무뿌리와 그루터기가 지니고 있던 양분으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잎을 밀어올린 ‘맹아’에 불과하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썩어버릴 수도 있다.

▽20년은 지나야 재생가능〓먼발치서 바라본 사천면 석교리 야산은 산불 후 지탱할 힘을 잃은 토사가 비에 쓸려내려온 흔적이 역력했다. 앙상하게 남은 소나무숲에는 군데군데 푸름을 간직한 나무들이 보였으나 이미 양분 흡수와 신진대사 능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커 3년 이내에 90%는 고사(枯死)할 운명.

그러나 희망이 없지는 않다. 임업연구원 신준환(辛俊煥)산림생태과장은 “100개의 나무중 2개만 살아도 숲의 재생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 나무들이 모수(母樹)가 되어 종자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것. 물론 조림(造林)이 아닌 이상 10∼20년에 걸친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새로 돋아난 참나무 순을 그냥 놔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제한된 양분을 놓고 서로 경쟁하다 보면 납작납작한 ‘숲 아닌 숲’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나무들이 자라나도 목재로서의 효용은 전혀 없다. 기껏해야 표고버섯 재배 정도에 활용할 수 있을 뿐.

척박한 토양에 강한 아카시아나무 같은 외래종들이 급속히 번식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일부 피해현장에는 아카시아가 참나무순보다 훨씬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앞으로의 과제〓조사단은 정밀한 생태조사를 통해 각 지역별로 나무를 선택해 일부를 솎아내는 것으로 제대로 된 숲을 조성할지, 아니면 인공조림을 통해 숲을 재생시킬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산림청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공청회 등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11월까지 복구계획을 확정한다.

산림청 신준환과장은 “생명을 살리고, 그것이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생산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죽은 나무 아래, 인근 묘지에서 날아온 국화씨가 여린 순을 피우고 있었다.

<강릉〓김준석기자> kjs359@donga.com

▼산불피해 고성임야 2ha에 산림청 헬기로 씨앗 뿌린다▼

산림청은 산불피해지역인 강원 고성군 주광면 토월리 임야에 5일 헬기로 씨앗을 뿌려 복구를 시도한다. 파종되는 씨앗은 토종 초류(풀씨)와 자작나무 등 목본류 종자(나무씨). 자연분해용 종이 안에 흙과 비료 점착제 등을 함께 넣어 뿌린다. 산림청 보유 헬기 중 안전성이 뛰어난 대형헬기 KA-32T가 지상 30∼50m 상공을 시속 30∼50㎞로 저속 비행하며 임야 2㏊에 공중 파종하게 된다.

임업연구원측은 “풀씨의 경우 파종 후 10일, 목본류가 20일만에 발아된다면 피해지역의 조기복구가 가능하다”며 성공할 경우 인공조림보다 비용이 3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산림청은 파종 후 발아율 등을 정밀 조사한 뒤 피해복구에 활용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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