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에서부터 변호사 의사 교도관 경찰관 사설경호원 은행간부 여행사대표 기업인 등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인물들이 총동원돼 ‘릴레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변씨 도피행적〓변씨는 97년 11월 검찰에 구속됐다. 변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한양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지난해 1월13일 병실 밖 난간을 통해 도주했다.
변씨는 지난해 6월26일 강모씨 명의의 위조여권을 이용,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 다롄(大連)으로 밀항했다. 그는 현재 중국 선양(瀋陽)에 머물고 있으며 두 아들까지 데려다 현지 사립학교에 보내는 등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변씨는 또 다른 위조여권으로 지난해말 입국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도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변씨는 중국에서 이리듐 휴대전화로 누나와 KS트러스트 사장 최경운씨(41)를 원격조종해 후속 사기범행을 저질렀다.
▽도피 도운 사람들〓하영주 변호사는 2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뒤 서울구치소 의무관(의사) 이현씨에게 3000만원을 주고 구속집행정지에 필요한 소견서를 받아냈다. 이씨는 변씨의 장모 권모씨로부터도 800만원을 받았다.
서울구치소 교도관 안병두 교위는 하변호사의 사무장으로부터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았다. 변씨와 함께 수감돼 있던 재소자 한주석씨는 변씨를 하변호사에게 소개시켜주는 대가로 하변호사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
변씨의 병실 경호업무를 맡은 사설경호업체 직원 송경한씨는 100만원과 ‘외국에 나가 잘 살게 해주겠다’는 변씨의 꾐에 빠져 다른 경호원들에게 말을 걸어 주의를 끄는 등의 방법으로 도주를 도왔다.
97년 11월 서울지검 특수1부에 파견 근무중 변씨를 체포하는데 공을 세웠던 서울 관악경찰서 김우동경사는 99년 9월 변씨의 장모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검찰의 추적정보를 변씨측에게 알려줬다.
김경사는 검사들의 도장을 훔쳐 수사협조의뢰 공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모 정보통신회사 지점에서 검찰이 조회해간 휴대전화 번호와 가입자 인적사항, 통화내용을 회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인천 D여행사 대표 김춘자씨는 변씨 누나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줬으며 임정섭씨(28·회사원·구속기소)는 변씨와 중국까지 동행, 비자연장 등을 도와줬다.
▼변호사 하영주씨 사기범 앞잡이 전락▼
‘마피아 변호사.’ 변인호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속기소된 하영주(河寧柱·39)변호사를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불렀다. 그러나 ‘마피아 변호사’라고 하기에는 그의 ‘실상’이 너무 초라하다. 하변호사는 10년간 군법무관(중령 예편)으로 있다가 97년 5월 개업했다. 현재 그에게 남은 재산은 서울 역삼동의 34평 아파트와 사무실 보증금을 합해 1억5000만원이 전부. 반면 은행 대출금 등 빚이 2억5000만원에 이른다. 최근 3개월간은 사무실 임대료 450만원과 부가세 680만원도 못내 세무서로부터 독촉장을 받았다.
하변호사는 법조계에서는 소수인 D대 출신에다 사법시험이 아닌 군법무관 시험을 거쳤고 90년 법원에서 실무수습 중 법원 말단 여직원과 결혼했다.
이처럼 별다른 배경이 없는 그는 변호사 개업 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건 수임에 열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한 측근은 “하변호사는 사건을 유치하느라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유치한 사건은 ‘실속’이 없었다. 4일 현재 그의 장부에 기록된 사건은 82건. 다른 변호사에 비해 2, 3배 많지만 수임료가 대부분 200만∼300만원인 ‘피라미’ 사건이며 무료 또는 성공조건으로 맡은 것이 22건이다. 그의 측근은 “200만, 300만원짜리 사건도 결과가 안좋아 의뢰인에게 물어준 것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변호사 업계의 경쟁과 불황이 심해지면서 구치소 재소자들에게도 접근하고 변씨 같은 사기범의 앞잡이 노릇까지 하게 됐다는 것.
하변호사는 변씨로부터 2억원을 받았지만 그중 6000만원은 구치소 의무관 등에게 뇌물로 줬고 1억원은 변씨측이 나중에 사무실로 찾아와 “한 일이 뭐가 있느냐”며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돌려줬다. 나머지 4000만원도 이런 저런 ‘활동비’로 거의 다 썼다고 한다.
한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굶주린 사자보다 배고픈 변호사가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며 “이번 사건은 ‘배고픈’ 변호사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