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 도쿄(東京)지사에 근무 중인 이재연(李在淵·31·여)씨. 지난 여름 일본 친구와 함께 귀국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국을 알고 싶다며 휴가를 내 이씨를 따라온 요리시다(30·여)는 가는 곳마다 터져 나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자주 놀랐다. 이씨는 “경적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일본 문화에 익숙한 친구가 수시로 경적이 울리자 적지 않게 놀란 것 같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자동차에 부착된 경적기가 상대방에게 위험을 알리는 수단으로 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운전 중 생긴 짜증이나 화를 상대방에게 여과없이 전달하는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교통질서캠페인 단체인 ‘녹색교통운동’이 올해 초 국내 주요 도시 교통 혼잡지역에서의 경적기 사용 빈도를 조사한 결과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교통 정체 지점에서 시간 당 평균 180회의 경적이 울린 것으로 나타났다. 20초에 한 번 꼴.경적기 사용 이유로는 ‘앞차의 출발 재촉’(31%)이 가장 많았으며, ‘보행자 위협용’(18%) ‘끼어들기 방지용’(12%)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사정은 다르다. 도쿄 신바시(新橋)역 부근은 부도심으로 하루 종일 교통량이 많은 곳. 지난달 31일 오전 9시40분부터 10시까지 20분 동안 다이이치(第一)호텔 앞 도심으로 향하는 5차로에서 들린 경적 소리는 단 4번. 일본인들은 운전 중 옆 차로가 비어도 좀처럼 차로를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경적을 울릴 필요가 없다. 일본계 금융회사 서울지사에 근무하는 소토(39)는 “일본인 중에는 1년에 한 번도 경적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30%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경적은 상대방에게 상상 이상의 피해를 준다. 대형 트럭이 경적을 울리면 정신병 유발 소음 기준(80㏈)을 훨씬 넘는 110㏈의 소음이 발생한다.
녹색교통운동 민만기(閔萬基)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적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양보에 인색하고 자신의 이익에 지나치게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먼저 양보하는 태도가 아쉽다”면서 “보행자보다 자동차를 우선하는 관련 법규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쿄〓심규선특파원·박정훈기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