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인호 도주 미스터리]숨은 손 있나? 없나?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25분


거액 금융사기범 변인호(卞仁鎬·43)씨의 구속집행정지 결정과 도주를 둘러싼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4일 변씨 도주 및 후속 사기범행을 도와준 혐의로 하영주(河寧柱·39)변호사 등 12명을 기소했지만 과연 이들만의 힘으로 변씨가 도주에 성공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구속집행정지 어떻게 가능했나〓변씨는 97년 11월 3900억원대의 금융 및 무역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변씨가 가로챈 돈 가운데 수백억원을 미국에 있는 자신의 형제 등에게로 빼돌렸다”고 밝혔다. 변씨는 다음해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막대한 돈을 해외로 빼돌린 상태에서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누구보다도 ‘도주의 우려’가 높았던 인물. 변씨는 그러나 그해 11월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구치소에서 풀려나 병원으로 옮겨졌다.

변씨에 대한 구속집행정지 결정에는 하변호사가 뇌물을 주고 매수한 서울구치소 의무관 이현(李賢·58)씨의 진단서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서만으로 구속집행 정지 결정이 해명되기는 어렵다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건강이 안좋다고 해서 ‘도주의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씨의 항소심 재판부도 이 점을 의식해 변호인들이 낸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않다가 변씨측 L변호사가 사설경호업체와의 ‘경호계약서’를 제출하자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관계자는 “이 ‘계약서’는 변씨측 변호사 4명이 변씨로부터 받은 수임료를 쪼개 경호비용을 분담하기로 하고 사설 경호업체와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경호원들은 감시대상인 변씨측이 고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병원측은 문제없나〓변씨가 서울구치소 의무실을 나와 실려간 곳은 한양대 병원. 법조인들은 이것도 의외라고 말한다. 이 병원은 서울구치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감중인 중환자들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씨는 이 병원에서 구치소에서와 비슷한 ‘중병(重病)’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진단서는 실상과 크게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변씨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는 수배상태에서도 지난해 한차례 밀입국해 추가 사기범행을 할 정도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하변호사가 이 병원의 주치의인 이모씨에게 1000만원씩 2차례 돈을 갖다줬으나 이씨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비스트의 역할은 없었나〓검찰은 변씨가 일찍 석방되거나 낮은 형을 선고받도록 해주겠다며 변씨측으로부터 각각 1억2000만원과 9000만원을 받은 한국유흥음식점중앙회 회장 오호석(吳昊錫·56)씨와 서교타운 대표 정홍길(鄭洪吉·58)씨를 각각 구속기소하거나 수배했다. 이들중 오씨는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인물. 이들이 과연 받은 돈을 혼자 챙겼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오씨가 실제로 한 역할은 거의 없고 받은 돈도 모두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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