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 자매는 94년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기 위해 500여만원의 거금을 들여 황해를 건넜다. 이들이 얻은 일자리는 여관 파출부.
낮에는 수십개의 방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밤에는 카운터 업무를 도왔다. 잠 잘 시간조차 없는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매일 손에 쥐어지는 ‘거금’ 6만원이 고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줬다. 그러던 중 98년 우연히 알게 된 모구청 공무원 이모씨(45)가 “500만원만 내면 중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해주겠다”고 제의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던 자매는 이씨를 믿고 500만원을 건넸지만 돈을 챙긴 이씨는 초청장을 만드는 대신 시간만 끌었다.
“이상했지만 항의할 수가 없었어요. 불법체류자가 공무원에게 대든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이씨는 자매의 이런 불안한 심리를 이용, 지난해 12월 다시 “사업에 쓸 돈 7000만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사업만 시작하면 두 사람에게 편한 일자리도 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도 빼놓지 않았다.
‘이국(異國)’의 물정을 모르는 자매는 그 말을 믿었다. ‘돈을 빌려줘 환심을 사면 가족 초청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순진한 상상도 했다. 이들은 결국 6년간 모은 전재산 6930만원을 내놓았다. 이씨는 그 돈을 자신의 빚을 갚는데 모두 써버렸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자매는 이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불법체류중인 자신들의 신분을 경찰에 노출시키는 것은 곧 ‘강제출국’을 의미했지만 전재산을 날릴 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경찰에 의지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미 돈을 탕진한 뒤였고 경찰도 돈을 되찾아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경찰은 ‘법대로’ 이들을 강제출국시키기로 했다. 가해자 이씨는 2월 직장에서 퇴직을 당한데 이어 7일 사기혐의로 구속됐을 뿐이다.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조선족 자매에게 ‘조국’은 ‘증오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