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가 죽어간다]기름-매립 폐기물-중금속 범벅 '땅'

  • 입력 2000년 6월 11일 18시 46분


1978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러브 운하’ 사건이 있었다. 나이애가라 폭포 하류의 파다만 운하를 매립, 집을 짓고 살던 주민들이 한꺼번에 질병에 걸렸던 것. 조사결과 1930∼40년경 어느 화학공장에서 운하 구덩이에 산업 폐기물을 무더기로 쏟아 부었으며 이로 인해 토양은 물론 주민들이 먹던 지하수까지 광범위하게 오염돼 있었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슈퍼 펀드’를 조성, 폐기물 매립지를 찾아내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하는 거국적 운동에 나서게 된다.

러브 운하 사건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공장 주유소 등의 노후화된 유류 탱크, 무분별하게 매립된 유해 폐기물, 방치된 폐광 등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원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0여m 깊이에 설치된 공장 주유소 등의 유류 탱크는 토양오염의 주범이다. 노후화된 유류 탱크에서는 기름 찌꺼기가 흘러나오는데 비가 오면 기름이 녹아 서서히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지난해 4월 경남 사천시에서 도로공사를 하던 중 기름이 섞인 흙 수십t이 발견됐는데 근처의 오래된 유류 탱크에서 몇 년 동안 흘러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 경남 거제시의 한 농가에서는 신축 주유소 인근 우물에서 기름이 솟아오르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나 주민들을 경악케 한 적도 있다.

환경부가 96년부터 3년간 전국 16개 시도의 주유소와 지하 유류 저장 탱크, 석유 화학제품 취급 업체 주변 땅의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172곳이 토양 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했다. 일례로 수원의 J주유소와 S주유소 땅의 유류 오염도는 벤젠 톨루엔 등이 각각 2771¤과 1814¤으로 기준치 80¤을 각각 30배,20배 이상 넘어섰다.

경북 영천시의 한 농장 주변 주민들은 지난해 악취와 시커먼 침출수를 견딜 수 없어 지역 환경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조사결과 골짜기를 중심으로 고무 기름통 등 산업폐기물이 1000t이나 불법 매립돼 있었고 침출수 위로는 시커먼 기름띠가 흘러다니고 있었다.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은 이 물을 사용하는 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90년 폐광된 충북 보은군 제일광산 인근 주민 20여명은 수년째 원인모를 관절통에 시달려 왔다.

95년 보건당국이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 취수장 8곳의 수질을 조사한 결과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이 되는 중금속인 카드뮴이 기준치를 30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광의 황철석과 잔류 철석이 지하수에 녹아들어 이 물을 마셔온 주민들이 중금속 중독을 일으킨 것이다.

국립환경연구원 류재근원장은 “축산단지를 중심으로 유출되는 분뇨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될 경우 어린이들에게 청색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년전에는 우물물로 분유를 타먹인 한 아기가 청색증 환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환경부가 올초 폐금속 광산지역 10곳의 수질을 조사한 결과 경북 토현 금장 광산의 경우 납 카드뮴 비소 수은 아연 등이 먹는물 수질기준을 각각 초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 주민 60여 가구는 아무런 정수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이 지하수를 마시고 있었다.

최근 창립된 지하수토양환경학회의 초대 회장인 배우근 한양대 환경공학연구소장은 “토양오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므로 실태를 파악하기도, 복원하기도 쉽지 않다”며 유류탱크와 폐기물매립장 등 오염원에 대한 정부와 기업들의 철저한 관리와 관심이 오염방지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용관·김준석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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