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564만 해외동포들의 기대-성원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은 전세계 130여개국에 살고 있는 564만여명의 해외 동포에게도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교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민족 웅비의 꿈이 지구촌에 널리 퍼질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과 경제 교류 활성화를 기대하면서 무엇보다 이산가족의 한을 푸는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남측 대표단을 태운 비행기가 13일 처음 북한 땅에 내리자 우리나라와 시차가 있는 미국 유럽 등의 교민들은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냈다. 일본의 조총련계와 민단계는 잇따라 합동행사를 갖는 등 갈등을 풀어 나가는 계기도 되고 있다.

1·4후퇴 때 4명의 동생을 북한에 두고 내려온 김일섭(金一燮·65·미국 뉴욕)씨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국제전화에서 “김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북으로 날아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만날 때 미국은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감격에 겨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 한국상공회의소 김영만(金榮萬·59·뉴욕)회장은 “북한과의 교류에 성급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꾸준히 접촉을 계속해 평화를 정착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평화배당금’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일본에서 조총련과 민단계의 화합을 위해 16년째 ‘한민족 페스티벌’ 행사를 벌여 온 정갑수(鄭甲壽·45·일본 오사카)씨는 “양측간 교류가 크게 진전을 보지 못했으나 정상회담을 앞두고 10일 합동 행사를 열었으며 14일에도 모임을 갖기로 하는 등 활발한 교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민 생활 15년째인 김훈(金勳·45·영국 런던)씨는 “밤을 꼬박 새우고 13일 새벽4시(현지 시간) 온가족이 BBC를 통해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만나 악수를 하는 걸 보는 순간 모두들 눈물을 글썽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상 회담후 이웃에 사는 영국인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해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뿌듯해했다.

부모가 1·4후퇴때 월남한 이종진(李鍾珍·45·스위스 바젤)씨는 “한국 방송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김대통령의 순안공항 도착 장면부터 영빈관 만남 장면까지 봤다”며 “부모님을 모시고 부모님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을 방문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김수철씨(52)는 “이산가족 서신 왕래 등 작은 것부터 확실하게 실천한 뒤 경제 협력과 통일로 차츰 이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上海) 한인상공회 정희천(鄭喜天·40)회장은 “위성방송을 통해 정상회담을 보고 우리 민족이 ‘통일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을 확신했다”며 “탈북자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테크월드기계라는 회사를 경영하는 이광선(李光善·43)씨는 “8·15 당시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가 역사적인 정상회담 광경을 못 보시고 7년전에 돌아가셔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아쉬워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정상회담을 지켜본 양익화(梁益華·42·네덜란드 암스테르담)씨는 “두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떨리고 감격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 CNN 방송을 통해 정상회담을 지켜본 김명기(金鳴起·43·한의사·미국 샌타모니카)씨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며 “북한이 개방되면 북한의 생수를 멕시코에서 파는 사업을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삼(鄭永三·50·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림건설주식회사 사장)씨는 “아르헨티나 교민 단체는 최근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힘을 합하자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내고 ‘정상회담 환영 대회’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광호(高光鎬·50·여행업·이탈리아 로마)씨는 “독일 통일 경험에 비추어봐도 정상회담만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만남으로 점진적인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자룡·정위용·김승진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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