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주민피해대책위원회 사무실이 위치한 마을회관은 '야전병원'같았으며, 매향리 보건소에서 파견나온 간호사는 약품이 부족하다고 쩔쩔맬 정도였다.
한편 경찰은 취재기자들에게도 욕설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원천봉쇄▼
경찰은 17일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대규모 집회를 '원천봉쇄'하기로 결정하고 매향리로 향하는 주요도로를 봉쇄했다.
경찰은 서해안 고속도로 발안톨게이트와 평택시 포승면에서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로 통하는 남양방조제, 화성군 발안에서 매향리로 통하는 21번 국도와 332번 지방도, 우정면 이화리 기아자동차 앞 등 주요 길목에 경찰을 배치하고 검문 및 출입통제를 실시했다.
모든 차량의 진입을 통제한 일부도로에서는 약 3시간가량 차량이 꼼짝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운전자들은 도로를 막고 막고 있는 경찰에 강한 항의를 했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매향리로 진입하지 못한 참석자 가운데 한총련 소속 4백여명은 사곡사거리에서, 학생과 재야단체 회원 4백여명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후문에서, 기아노조 1백여명은 기아사원아파트앞에서 각각 2~3시간 가량 시위를 벌였다.
한편 관광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진입하던 참석자들도 경찰이 톨게이트에서 막자, 승합차와 승용차 등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매향리를 향했다.
▼폭력진압▼
이날 집회를 취재하던 외신기자는 "20년전 서울의 데모현장을 보는 같다"며 경찰의 과잉진압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국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은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집행위원장 최종수 신부가 경찰의 곤봉에 맞아 이마와 눈 부위를 심하게 다치고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인근 현대병원으로 후송됐다.
또한 SOFA개정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던 국민행동 김종섭 조직국장도 현대병원으로 후송됐으며, 국민행동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 역시 무릎을 다쳐 마을회관 안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국민행동 김종일 집행위원장은 "약 30여명의 후송자가 발생했으며 부상자는 이보다 더 많다"고 밝혔다.
한편 119 구급대는 부상자를 조암 성심병원과 발안 성모병원, 현대병원 등으로 분산, 후송하였다.
▼집단폭행▼
이날 집회에는 전투경찰 6천여명이외에 사복경찰도 약 50여명 이상 눈에 띄었다.
이들은 집회장소에 결합하지 못한 주민과 참석자를 전경버스 안으로 끌고 들어가 폭행을 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 노조측에 따르면 오후 3시경 사복경찰 7명이 이영하 쟁의부장을 전경버스에 강제로 태우고 구타를 했다.
이영하 부장은 "사복경찰들은 차안에서 15분동안 뺨과 얼굴을 때리고 고개를 숙이라며 폭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노조원들이 쟁의부장이 차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달려오자 곧 이부장을 풀어주었다.
또한 매향리 주민 이춘자(56)씨는 사복경찰에게 발로 밟혔다며 보건소에서 진료를 나온 간호사를 찾아왔다.
이씨는 "길 가에 앉아 있는데 사복경찰 5,6명이 에워싸고 머리채를 잡고 뒤로 넘어뜨린 다음 뺨을 때리고 발로 밟았다"고 주장했다.
▼민간피해▼
오후 7시경, 한총련 소속 학생 4백여명이 경찰과의 마찰을 피해 마을회관 뒷길을 이용해 대회장에 진입하자, 전경 1백여명이 달려나오며 학생들을 공격했다.
이과정에서 김금단(60)씨의 채소밭 7백여평 중 일부가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김씨는 "여기서 나는 돈으로 새끼들 먹고 사니까 책임져"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현장지휘를 맡은 경기도경 12중대 중대장 이경환 경감은 "상부에 보고해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과했다.
곁에 서있던 한 주민은 "미군 폭격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더니, 이젠 경찰 군화발에 채소밭도 쑥대밭이 되는구먼"하고 한탄했다.
▼집회진행▼
오후 4시경에는 가수 안치환씨가 대회장에 등장, '광야에서' '임을 한 행진곡'을 불러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중학교까지 매향리에서 살았으며, 부모가 아직 매향리에 살고 는 안치환씨는 "어릴 때는 무서워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참으면서 살았다"고 회상했다.
안치환씨는 "이제 주민들만의 싸움이 아닐 것"이라고 자신하며 "평화로운 매향리를 만들자"며 주민들에게 힘을 북돋아줬다.
한편 대회 참가자들은 논두렁을 건너거나 산을 넘어 속속 대회장을 모여들었고, 오후 7시 40분경 약 1천5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정리집회를 마치고 해산했다.
국민행동 김종일 집행위원장은 "19일 폭격 재개방침에 대해 모든 인원을 동원해 매향리에 집중할 것이며, 결사대 3백여명을 조직해 농섬을 점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매향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은 19일 폭격이 재개되면 2시간 이내로 명동성당에 모여달라고 당부했다.
[17일오후 시간별 상황일지]
1시: 발안,조암방면으로 향하는 국도가 극심한 정체를 보이고 있다. 통제를 하는 교통경찰은 "시위대가 있어 길이 막혀있다. 갈 수가 없다"며 모든 차량의 통행을 금지시켰다.
2시: 경찰의 협조로 본사 취재차량만 통과하여 도착한 결과, 매향리 진입 삼거리로부터 약 10Km지점에 시위대가 아닌 전투경찰 약 200여명이 양쪽 차선을 막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모든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경찰헬기도 보이고 경찰들은 학생들이 탄 관광버스를 세워두고 있었다. 관광버스는 약 5대가량 보였다.
현장지휘를 하던 경찰은 "차에서 내려서 대치를 하든지, 맘대로 해라"고 이야기했다.
2시 15분: 관광버스들이 방향을 돌려 돌아감. 다른 진입로를 찾을 것으로 보임. 취재차량은 다시 경찰 저지선을 통과하고 2시 30분경 매향리에 도착했다.
2시 30분: 마을회관앞에 마을 주민을 비롯해 약 200여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오전 마을 회관을 둘러쌌던 전경들은 마을회관앞 공터까지 물러나 있다. 집회장소 둘레로 전투경찰 저지선을 만들고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3시:기아자동차 노조 100여명이 쿠니사격장 쪽 경찰저지선을 뚫고 마을회관 앞 50여미터까지 들어왔다. 전투경찰복을 입은 현장지휘관은 "끝까지 죽여버려, 기자들 카메라 부셔"라고 웃으며 지시했다. 그 모습을 기자가 보고 수첩에 적자, 소형 마이크를 가진 중대장 한 명이 보란듯이 "공격을 하더라도 방패로만 막아라"라고 대원들에게 지시함.
3시 10분: 기아노조원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비켜라"며 나뭇가지를 꺾어 산발적으로 전경을 공격했다. 일부 노조원들은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계속된 마찰로 상당히 격분한 듯 보인다.마을회관 방향에서 막던 전경들이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고, 노조원 다수가 부상당했다. 파악된 기아 노조 부상자=이상진(조합원) 서원철(산안부장) 정형기(조합원) 김종석(조직실장) 김상완(경기도본부장) 김일주(조합원) 최승군(교육부장)
싸움이 격렬해지자 쿠니 사격장 쪽에 있던 전경들이 뒤쪽에서 공격하기 시작함.
뒤쪽의 전경들은 노조원들을 구타하는 모습을 찍던 카메라 기자 10여명이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쪽에서 갑자기 곤봉을 휘두르며 기자와 시위대의 구분없이 공격함.
기자들과 노조원 5∼6명은 고개를 숙이고 맞으며 오른편 산쪽으로 피신.
이 과정에서 본사 디지털카메라 파손. 기자 수차례 경찰곤봉으로 구타당함.
TV 카메라는 외곽에서 이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음.
사복경찰이 경기방송 TV 카메라의 렌즈부분을 잡고, 촬영을 저지함.
기자가 강하게 항의하자 기자의 멱살을 잡기도 함
MBC 카메라도 마찬가지로 촬영을 저지당함.
경기도경 이상업 3처장 도착.
기자들이 강하게 항의하자, 사과한다고 말함.
외신기자들의 요청으로 무전을 함.
"기자들의 취재에 적극 협조하라"
3시 40분: 안치환 '광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공연
안치환씨는 매향리 마을회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이곳 주민임.
"평화로운 매향리 미국의 압제로 고통받는 내 고향에 와서 민족의 자주권을 찾기 위해 모이신 애국시민 여러분께"라며 "앞으로 여러분만 모여서 시위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애국시민이 함께 할 것입니다. 힘내십시오"라고 격려했다.
전투경찰을 백댄서 삼아 노래하는 안치환, '광야에서'가 불려질때, 방패에 팔을 베고 노래감상을 하던 전경을 뒤에서 누가 툭하고 치니 "이병 000"하고 관등성명을 대며 움찔한다.
맨 앞줄에 단병호 위원장이 양복바지를 흙바닥에 뭉개며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다.
안치환씨는 중3때 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비행기가 바로 우리집 위를 지나가서 폭격을 하죠. 울기도 하고 참으며 살았죠"
안치환씨는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냐"는 질문에 "아무도 모르는 길을 알죠"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3시 51분: 권영길 민주노동당 총재 "김대통령은 한반도에 전쟁의 위협이 없다고 전세계에 공포했다. 그런데 여기서 폭격을 하는 것이 평화의 물결입니까? 전쟁의 물결입니까? 김대통령을 만나 확실히 전쟁의 위협이 없는가를 묻고 그렇다면 폭격을 중지시키라고 하겠습니다."
주민들 "옳소, 옳소"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도, 집회의 모습도, 여기는 20년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폭력진압으로 쓰러지는 사람들과 한 사람의 연설에 박수치며 "옳소,옳소"하고 소리치는 주민들의 모습들.
권오헌 민가협 공동의장은 집회장소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자신이 소개되자 마을회관 앞 산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4시: 안타까운 심정이 가득 담긴 전만규 위원장의 편지를 최용운 임시위원장이 읽음. "마을 주민 모두 살기좋다는 미국으로 이민갑시다"라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함.
4시 5분: 야산에 있는 주민, 참가자, 쿠니사격장 방향 기아노조원들과 함께 집회를 하기 위해 경찰병력을 밀어내려고 함.
경찰은 전경버스를 바로 뒤에 대고 연행할 준비를 모두 마친 듯보임.
4시 15분: 동아대 학생 1명 왼쪽 눈을 돌에 맞아 쓰러짐. 몸으로 미는 학생들을 전경들 곤봉으로 내리침. 양쪽 모두 돌멩이를 집어 던지고 있다.
4시 40분:이춘자씨(56·마을주민) "앉아 있는데 사복형사 5,6명이 머리채를 잡고 넘어뜨리고 뺨을 때리고 발로 밟았다."
팔을 쓰지 못하겠다며 보건소에서 진료나온 간호사를 찾아 회관안으로 들어옴. 얼굴은 뻘겋게 부은 듯 보였다.
간호사는 "외과에 가서 촬영을 해 봐야 한다"고 말함.
매향리 보건소 소속 간호사는 "군보건소에서 나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함
4시 50분: 해프닝. 우체부가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전경들 사이로 나가려고 하자, 전경들이 비켜서지 않았다. 시위군중들 "야, 공무집행 방해다"라며 외침. 우체부는 곧 돌아서 다른 방향으로 나감.
4시 52분: 전경버스가 또 6대가 더 들어왔다. 도대체 병력이 얼마나 오는 것일까?
4시 55분: 반미구국선봉대 소속 건대, 조선대 등 학생 150여명이 3시간을 걸어서 기아노조원들이 있는 쪽으로 집합, 논두렁을 건너며 경찰 저지선을 몸으로 뚫고 들어온 학생들은 모두 진흙으로 뒤범벅.
신발을 벗어 땅에 흙덩어리를 떼내려 털며 서로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조선대 학생들은 "이 동네 전경들은 왜 이리 부실해"하며 웃는다.
5시: 전투경찰이 도로 오른편 산위로 올라가 포위함.
민주노동장 광주지부 60여명, 안산지부 30여명, 민주노총 안산지부 150여명이 더 도착함.
5시 15분: 학생들이 철조망에 플래카드를 걸었다. 산발적인 마찰이 있다. 철조망 철거를 시도함.
5시 17분: 철조망의 일부가 파손되기 시작함.
카메라기자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 가운데 반 정도가 경찰인 듯 보인다.
5시 20분: 전경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최루가스 살포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약 3차례 정도. 철조망 안쪽에서 돌멩이 20여개가 시위대 쪽으로 날아옴.
전경들 "와" 소리를 지르며 곤봉을 내리치며 달려 나오기 시작함.
학생 10여명 나뭇가지를 가지고 싸워보지만 역부족.
도로 오른편 산위에서 사복경찰이 학생을 넘어뜨리고 밟고 있었다. 옷이 거의 다 찢긴 채 울면서 경찰의 다리를 잡고 있는 남학생. 얼굴은 부어올랐다.
주민들이 말리고 있지만 경찰은 옷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있다.
기아노조원들이 뛰어들어 경찰을 밀치고 학생을 데리고 옴.
5시 40분: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아주머니들이 전경들 앞에 손을 잡고 서있다.
5시 50분: 최종수 신부가 이마와 눈 부위를 돌에 맞아 현대병원 후송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짐. 김종섭 사무국장도 현대병원으로 후송. 현대병원에 총 13명이 있다고 함. 119 구급대 차량이 4대가 보임.
6시:우호태 화성군수가 시위대와 경찰을 중재하려고 나섬.
6시 25분: 경기도경 이상업 3처장과 우호태 화성군수가 고영대 자통협위원장,김종일 집행위원장, 최용운 주민대책위원장을 만남.
△시위대측 요구:정리집회를 위해 주변 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들어오게 해달라는 것. 소요시간이 15분정도밖에 안걸리며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으며 일몰 전까지 행사를 마치고 해산하겠다.
△경찰측 요구:원래 원천봉쇄의 집회를 그런 식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 이 상태에서 모인 사람만으로 집회를 끝내라.
△화성군수 중재안:멀리 있는 사람은 제외하고 약 50여m 떨어진 기아노조와 학생들 대오를 합류하는 것으로 하자.
양쪽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다소 격분된 모습으로 협상 결렬됨.
6시 50분: 조암터미널에 대기하고 있던 학생 400여명이 걸어서 도착. 학생들이 접근하자 전투경찰들 "뚫리면 다 죽어"라고 고함치며 긴장.
학생들은 대기하고 있는 전경들 바로 앞에서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마을 회관 뒷길로 해서 집회장소로 들어갔다.
전경들은 싸우려고 할 줄 알았던 학생들이 예상외로 움직이자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7시 5분: 학생들 4백여명이 진입하자 집회장소를 에워싸고 있던 전경들이 몰려나와 밭을 아랑곳없이 학생들쪽으로 달려옴. 이과정에서 주민 김금단(60)씨의 채소밭 7백여평중 일부가 훼손됨.
주민들이 전경들이 밟아버린 채소를 들고 강하게 항의함.
현장지휘를 맡은 경기도경 12중대 중대장 이경환 경감은 "상부에 보고해서 조치하겠다. 주민들의 심정을 다 이해한다"고 사과함.
7시 20분: 철조망 20여m가 끊어짐. 기아노조원과 학생들 200여명 산을 넘어 집회장소로 합류.
민주노총 조직1국장 신언직씨는 "지난번 철조망이 훼손되고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며 경기도 지방경찰청 3처장이 "미국에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라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고 전함.
7시 40분:정리집회 후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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