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大亂/의사들 고민]"옳진 않지만 최후의 수단"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12분


“저희 의사들은 환자를 떠나서는 아무런 ‘존재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등지겠다고 선언하면서 저희들은 실로 참담함과 아득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19일 서울 여의도 가톨릭성모병원 전공의 박훈준씨(31)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약분업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 폐업과 환자들 사이에서 많은 의사들이 인간적인 갈등과 의사란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의도 성모병원의 경우 전공의와 수련의 205명 중 휴가중인 전공의 등을 제외한 201명이 병원측에 사직서를 냈다. 박씨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환자들을 마다하고 폐업이라는 극한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당장 환자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의료대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부분 폐업에 동참키로 했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소재 ‘미래와 희망’산부인과 의원. 폐업 소식에 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용복원장은 “큰 병원에서 근무도 해보고 직접 병원도 만들어 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좋은 의사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폐업에 들어갈 서울 관악구 양종목내과의원원장도 “의사들이 폐업을 한다는 것은 옳은 방식은 아니지만 최후의 수단이자 마지막 절규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7월1일 시한에 맞춰 무리하게 행정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집단 폐업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내놓고 많은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의료현실과 히포크라테스선서 사이에서 큰 심적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약분업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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