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비상]美-日 의약분업 현황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40분


《온 나라와 국민을 진통과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의약분업. 선진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와 이해 집단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미국과 일본의 경우를 통해 알아본다.》

▼美 상호 존중…약사처방-병원조제 없어▼

의약분업에 따라 의사와 약사의 역할과 영역이 확실히 구분돼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의사와 약사(조제사)를 별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직종으로 인식하고 있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법으로 의사의 조제권을 금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분업이 확립돼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같은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

경제적 측면에서 봐도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전을 써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지를 맞출 수 있으므로 굳이 조제 영역을 넘보지 않는다. 또 개인병원에선 약사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약사를 별도로 고용하는 경우는 없고 의사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을 시켜 약을 조제케 하는 일도 없다.

또 약사가 환자로부터 증상을 듣고 임의로 약을 처방해 주는 일도 없다. 약사는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비처방약(OTC)에 국한해 환자의 문의가 있을 때만 일반적인 조언을 한다.

의사와 약사가 이처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므로 의약품의 조제권을 둘러싼 이권 다툼을 벌이느라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뒷전에 두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日 의사 조제권 허용…분업률 30%線▼

우리보다 앞서 의약분업을 도입한 일본은 동양의학의 전통과 의사들의 반발 때문에 완전 의약분업이 아닌 임의 분업을 채택, 분업에 관한 한 실패 사례로 꼽힌다.

즉 처방전 교부에 대한 포괄적인 예외 규정을 두어 의사에게 조제권을 폭넓게 허용하고 환자가 원할 경우에만 원외 처방전을 발행토록 해 현재도 분업률은 30%선에 그치고 있다.

일본은 1958년부터 분업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사회 유력층인 의사들의 반발과 로비로 계속 연기되다가 관련 법안을 대폭 양보해 1974년에야 분업을 시작했다. 당시 50엔이었던 원외 처방전 발행료를 10배나 되는 500엔으로 인상해 분업으로 인한 의사측 손실을 상당 부분 메워 주고 원외 처방전 발행을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겼다.

항간에는 일본에서 의약분업 도입시 의사들이 폐업을 하는 바람에 환자 수백명이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본 의사들은 1978년 1주일간 병원내 조제를 중지하고 원외 처방전만 발행하는 ‘실력행사’를 벌였으나 폐업한 적은 없다. 병원밖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야 하는 불편함을 환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90년대 들어 병원에서 직접 제조해 판매한 데 따른 약해(藥害)사건이 빈발하면서 분업에 참여하는 병원이 조금씩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의사측 반발은 적지 않다. 일부 병원에서는 원외 처방전을 발행하다가 갑자기 경영이 나쁘다는 이유로 다시 원내 약국을 이용하도록 해 물의를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워싱턴〓한기흥·도쿄=이영이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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