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러한 탈출 규모는 분단 이후 최대 규모의 집단 망명으로 기록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귀순한 지 3년 반이 지난 현재 김씨 일가족은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힌 채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몸이 불편한 김씨는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혼자서는 식사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아 주변에 사는 딸들이 번갈아 드나들면서 김씨의 병 수발을 하고 있다고 가족은 전했다.
부인 최현실씨는 기독교에 귀의해 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함께 귀순한 장남 김금철씨 내외를 비롯해 둘째딸 명실씨, 셋째딸 명숙씨 등도 각각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특히 96년 당시 임신중인 몸으로 북한 탈출을 감행해 화제를 낳았던 막내딸 명순씨가 귀순 직후 한국에서 낳은 아들 대한(大韓)군도 다섯살 어린이로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러나 이들 가족의 경제적 형편은 매우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통일부 관계자는 “장남 금철씨가 최근 사업에 손을 댔다가 보증금을 떼이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호씨의 부인 최현실씨도 최근 8000만원대의 사기를 당해 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최씨는 중국에 은신하고 있는 가족을 위해 서울에서 고용한 중개인에게 수천만원대의 자금을 제공했으나 이 중개인이 가족을 버리고 혼자만 도망쳐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최씨는”법에 호소해서라도 돈을 찾고야 말겠다”고 말했다.
성기영<주간동아 기자>sky320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