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은 23일 삼성전자가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장남 재용(在鎔)씨에게 450억원 어치의 사모(私募)전환사채를 발행한 것과 관련해 참여연대측이 제기한 전환사채발행무효 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에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며 기각했다.
문제는 판결문의 내용이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전환사채 발행은 이건희 회장이 아들인 이재용씨에게 편법으로 증여한 것으로 인정되며 절차에도 하자가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불법증여와 탈세를 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현행 상법에는 이를 제재할 규정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고심 끝에 참여연대의 청구는 기각했지만 전환사채를 통한 편법 상속을 가능하게 하는 상법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분명히 나쁜 일이지만 처벌을 할 근거가 미약하다는 논리다.
참여연대는 즉시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여연대의 장하성 교수는 “법원이 삼성의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하면서도 기각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측은 “이번 삼성전자의 전환사채 발행 건은 95년말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승계작업의 일환”이라며 “재용씨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아 16억원만을 증여세로 물고 4조원대에 이르는 재산 불리기와 경영권을 확보해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고법 판결로 신주 발행의 효력이 발생, 재용씨가 260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챙겼다고 덧붙였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법원이 전환사채를 통한 편법 상속을 가능하게 하는 상법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이나 참여연대의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 채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만 밝혔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