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5년 진단]제구실 못하는 감사제도

  • 입력 2000년 7월 4일 18시 57분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예산낭비를 해당 지역 의회나 주민이 감시할 수 있는 장치로는 ‘결산검사제’와 올 3월 새 지방자치법에 도입된 ‘주민감사청구제’가 있다.

감사원 행정자치부 등이 지자체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이들 외부기관이 상시적으로 감사활동을 벌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산검사제와 주민감사청구제는 의회와 주민에 의한 상시 감시장치이지만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현실성이 떨어져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결산검사란 지방자치단체장이 매년 6월말까지 세입 세출 결산서를 해당 의회에 제출하면 의회가 공인회계사나 세무사 등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예산을 올바로 썼는지를 검토하는 제도.

전문지식을 갖춘 외부 인력이 공정한 시각으로 지자체의 예산 및 결산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검사위원이 관련서류 제출을 요구해도 지자체나 공무원이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데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시내 모구청의 결산검사를 맡았던 한 공인회계사는 검사보고서 곳곳에 “관련자료가 제출되지 않아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이 회계사는 “공무원들이 자료제출을 거부해도 이렇게 보고서에 기록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다”며 “공무원은 물론 검사 주체인 지방의원들도 결산검사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에게 돌아가는 보수가 낮은 것도 문제. 현재 각 지자체가 조례로 정한 검사위원의 일당은 약 5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시내 한 구청의 결산검사위원이었던 어느 회계사는 “친분 있는 지방의원들의 부탁으로 일을 맡긴 했지만 솔직히 그 돈 받고 열심히 일할 회계사는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결산검사를 회계법인이나 연구원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 맡기고 지자체는 검사위원의 서류제출 요구에 의무적으로 응하게 하는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지자체의 위법, 또는 공익에 반하는 행정에 대해 상급기관에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주민감사청구제다. 현재 상당수 지자체는 관련 조례를 만들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직접 자치단체의 행정을 감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이 제도가 주민들의 참여와 감시기능을 오히려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각 지자체가 수백∼수천명의 주민이 서명을 해야만 감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조건을 까다롭게 정했기 때문이다.

개정 지방자치법으로 주민들의 감사청구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보려면 이 법이 시행되기 전 일부 지자체가 실시한 ‘시민감사청구제’와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서울 부산 인천 등지의 구청에서 운용했던 시민감사청구제에 따르면 감사를 청구하기 위해 서명을 받아야 하는 주민수는 경기 안산시 1명을 비롯, 대부분 10∼100명이었다.

하지만 주민감사청구제에서는 최소 청구인원이 보통 500∼1000명이다. 자치단체의 불합리한 행정을 발견한 시민이 있더라도 감사를 청구하기 위해 이 정도의 서명을 받기란 매우 어렵다.

최소 청구인원을 높게 잡은 것은 감사청구 남발을 막기 위해서라는 게 지자체와 지방의원들의 주장. 서울시내 한 구의회 의원은 “주민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면 행정에 큰 혼란이 올 가능성이 있다”며 “감사 남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원 제한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시민감사청구제도 실시 당시 최소 청구인원이 10∼50명이었던 서울시내 8개 구청의 경우 지난해 감사청구는 한 건도 없었다. 최소 인원이 200명이던 강동구에서 단 1건의 감사청구가 있었을 뿐이다.

참여연대 이태호(李泰浩)시민감시국장은 “일본에서는 단 1명의 주민도 감사를 청구할 수 있을 정도로 주민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돼 있다”며 최소 청구인원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중랑구의회 유창균의장 "주민 참여 활발해져야 정착"▼

올해 3월 새 지방자치법이 실시된 후 서울 중랑구는 주민감사청구제의 최소 청구 인원을 700명으로 잠정 결정했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구의회 의결 과정에서 200명으로 크게 낮춰졌다.

중랑구 의회의 이같은 결정은 서울 시내 각 자치단체들이 최소 청구 인원을 500∼1000명 수준으로 정하고 해당 의회들이 대부분 이를 그대로 통과시킨 것과는 대조적.

특히 서울 영등포구의회는 자치단체가 500명으로 정한 최소 청구 인원을 의결 과정에서 1000명으로 늘렸다.

중랑구의회 유창균(柳昌均)의장은 “우리 중랑구 의회의 경우 대부분의 의원들이 주민감사청구제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민들에게 권한을 더 줘야 한다는데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유의장은 “주민들의 권리가 강화된다고 해서 지방의회 의원들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한다.

“의원들의 임무는 자치단체가 제대로 일하는지를 감시하는 겁니다. 그런데 현행 제도로는 의회가 이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주민감사청구제는 자치단체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뜻이 있고 그것은 곧 지방의회 기능의 강화를 의미하죠.”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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