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총파업을 앞두고 첫 공식 대화자리를 만들어 기대를 모았던 정부와 금융노조간 1차 협상은 4시간 이상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9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만나자”는 사실만 합의하는데 그쳤다.
▽무슨 얘기가 오갔나〓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은 협상 직후 “워낙 관치금융 논쟁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 의미있는 대화가 오가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노조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은행부실은 ‘대기업에 돈 빌려주라’는 정부 지시에 따른 결과인 만큼 정부와 재벌에 책임이 있는데 은행원만 거리로 내몰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노조는 ‘창구지도’ 등 관치금융 철폐를 위한 특별법제정을 거듭 주장했다.
노조는 다만 금융지주회사법 제정을 위해 정부와 노조간에 협의체를 구성해 노조의 견해를 법안에 반영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밖에 대우채 강제인수 등 정부 요구에 따른 은행부실은 정부가 ‘공적자금’ 추가투입으로 책임져야 하며 은행원 감원사태를 막기 위해 은행간 강제합병을 추진하지 말 것도 요구했다.
정부는 ‘노조가 은행원 감원문제를 우려하면서도 불분명한 관치금융 논쟁으로 여론의 힘을 얻으려고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날 협상에서 “관치금융은 없다”며 노조측의 관치금융 논쟁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문서없는 창구지도 논란〓이날 협상에서 금융노조는 금융감독원의 ‘공문없는’ 창구 지도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금감원이 공문(公文)없이 금융기관에 전화로 ‘창구지도’를 벌이는 등 지나친 개입은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가 꼽은 ‘문서없는’ 감독 사례로 △98년 이후 워크아웃 기업 여신 △99년 은행의 대우채 인수 △지난달 은행권의 종금사 자금지원 △10조원대 채권펀드를 조성해 은행권에 8조원 할당 등을 꼽았다. 따라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인 ‘대우채 떠안기’로 금융시장이 망가졌지만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은 “국민의 정부에서 ‘관치금융은 없다’”고 잘라말했다고 이위원장은 전했다. 노조가 금감원 부원장이 국민은행장으로 ‘이동’한 사실을 내밀자 이장관은 “방법상 문제는 있었지만 관치금융으로 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정부측 한 참석자는 점심식사 도중 “영국을 포함해 전세계 금융 구조조정 가운데 문서를 남긴 나라는 한 곳도 없다”며 ‘불가피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을 내비쳤다고 이위원장은 말했다.
▽재협상 전망〓1차 협상 자체만을 놓고 보면 2차 협상 결과 역시 낙관하기 어렵다. 1차협상에서는 노조가 요구한 3개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정부와 노조가 파업은 ‘공멸’이라는 공통 인식하에 2차 협상을 약속한 것 자체가 큰 수확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도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금융구조조정의 기본원칙에 입각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 협상으로 문제를 타결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다. 1차협상은 양측이 최종카드를 숨긴채 명분쌓기에 주력하는 양상이었지만 9일 ‘일요 협상’에 앞서 물밑대화를 벌여 의견조율에 나선다면 극적인 타결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