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파업이 관치금융에 초점이 맞춰져 은행 경영진 등 사측이 배제된 채 협상이 이뤄진 점은 좋지 않은 선례로 남게 됐다. 앞으로 각종 노사분쟁에서 노조측이 정부만을 상대로 대화하려고 할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또 일부 은행들과 노조가 보여준 ‘파업불참결의대회’ 등을 둘러싼 공방은 향후 은행조직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힘은 무서웠다〓견고하던 금융노조의 파업대오가 흔들린 것은 파업은행들의 예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부터. 3일 파업선언 이후 4일 만인 7일 주택 국민 기업 조흥은행이 정상영업을 선언했다. 그 뒤 전 은행이 정상영업을 선언하고 파업불참은행이 속출하게 된 것. 특히 파업 당일인 11일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노조원의 복귀를 명령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실제 파업은행으로 분류된 은행 노조원들은 신문사 등에 전화를 걸어 “예금이 빠져나가 은행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느냐. 우리는 파업 안한다”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결에서 협상으로〓이번 협상은 한마디로 반전의 연속이었다. 윤태수 금융노조홍보위원장이 “더이상 타협은 없다”며 협상장을 뛰쳐나온 것이 세차례. 최종 결렬로 가는 듯했던 협상은 또 다시 재개되면서 ‘협상타결’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계속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막후에서 노동계 관계자를 만나 우회적인 설득을 계속했으며 금융노조도 11일 파업 돌입을 전후해 무리한 강경투쟁은 자제하며 화답했다. 결국 정부는 구조조정원칙을 지키고 노조는 실리를 얻는 ‘윈윈게임’에서 성공한 것.
▽후유증은 없나〓이번 협상은 그러나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조가 기세가 보이면 언제든지 정부와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번 파업의 영향으로 노조 등이 걸핏하면 “대통령과 결단을 내야한다”는 식의 얘기가 앞으로는 더욱 자주 나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노정합의를 노사정위원회에서 공식화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도출해냈다는 것이 새로운 전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