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판사 "현 사법부 구성 민주적 정당성 결여"

  • 입력 2000년 7월 13일 18시 46분


‘사법부 구성의 민주적 정당성 회복’으로 요약될 수 있는 정진경(鄭鎭京)판사의 글 내용은 재야 법조계의 오랜 주장과 통한다.

민주 사회에서 입법 사법 행정 등 헌법상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투표로 선출하는 것은 이런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

그러나 헌법은 사법부 수장(首長)인 대법원장 임명에 대해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있고 이렇게 임명된 대법원장은 대법관 인선에 전권을 행사한다. 결국 국민은 사법부 수뇌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국회를 통한 간접적인 신임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

특히 현행 헌법규정은 72년 박정희(朴正熙)정권의 유신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그 이면에는 사법부를 손쉽게 통제하려는 권력의 이해가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 정판사와 재야 법조계의 시각이다.

유신헌법 이전인 제1, 3공화국시절에는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고위법관회의’의 제청에 의해 임명하도록 했고 제2공화국 헌법은 아예 법관의 선거로 수뇌부를 선출토록 했다.

한편 이번 대법관 인선에서처럼 역대 대법원장들이 대법관으로서의 자질과 함께 지역안배나 기수 등을 고려하는 현실적 관행도 종종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장은 인선에 앞서 각종 자료와 측근들에 자문하지만 공식적인 의견수렴절차는 없는 상태다.

6일과 7일 실시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다수의 여야 의원도 이를 ‘밀실인사’라며 후보자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법원 수뇌부는 사견임을 전제, 정판사와 재야의 주장이 “대중주의에 입각한 위험한 발상이며 법원의 독립과 권위를 도리어 추락시킬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부장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권력이 아닌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법원의 지상과제가 된 마당에 수뇌부 인선에 외부 인사들을 개입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다른 판사는 “1, 2, 3공화국 때는 법관들이 이해에 맞는 수뇌부를 옹립하려고 파벌을 조성하기도 했다”며 “대법관도 임명제청에 앞서 다량의 자료와 자문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인선에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법원 제도 변화와 관련된 판사들의 문제제기에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 이번 문제 역시 당분간 ‘휴화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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