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엔 좀 달랐다. 행원이라면 누구나 “파업할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만 억울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인줄 알았다면서도 총파업에 동참했던 평화은행 신림지점 김승덕(38)과장. 평행원도 아닌 그가 억수같이 퍼붓던 빗속의 연세대 노천극장을 떠나지 않았던 사연을 보내왔다.
“11일 새벽녘 억수같이 비가 왔을 때 잠시 처마밑으로 몸을 피했어요. 신세가 처량하더군요.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왔을까. 이러고 살아야하나. 자괴감에 몸이 떨렸어요.”
그가 11년 전 첫 직장을 1년 만에 그만두고 은행원이 된 단 하나의 이유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은행원은 불안한 직군의 대명사가 돼버렸지요. 몇 년전만 해도 은행원이 신랑감 후보에서 상위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농촌총각 다음도 아닌 ‘옌볜 총각’ 다음이라고 농담을 하죠. 은행원처럼 지위가 급락한 직군도 없을 겁니다.”
그가 전하는 행원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살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행원 개개인이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요. 은행 자체가 흔들리니까 늘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은행 부실의 대부분은 행원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정책실패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은행원들은 잘못한 것도 없이 왜 우리만 당하느냐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지요.”
실제로 대다수 행원들은 ‘정부 말을 너무 잘 들었다는 것말고는 잘못한 게 없지 않으냐, 하라는 대로 했더니 이제 와서 우리만 잘못하는 것처럼 매도당한다’고 말해왔다. 금융노조의 ‘관치금융 철폐’ 주장에 은행원들의 공감한 것도 이 때문.
그는 또 더 큰 문제는 정부 규제(관치)에 ‘길들여져’ 의욕 자체도 꺾인 것. “물론 우리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젠 규제에 하도 익숙해져 상품개발할 생각도 안해요. 수수료 하나도 자율적으로 정하지 못하는 걸요.” 그래서 행원들은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다들 꿈을 잃었어요. 임원되면 뭣 하느냐고 그래요.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압력’으로 잘못 대출해주면 정권이 바뀐 뒤 쇠고랑이나 차고….”파업투쟁이 ‘소득없이’ 끝났다고 여기면서도 그는 한가닥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답답하죠. 비우량은행은 다시 합병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이고. 하지만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은행원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겠죠.”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