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戰 '양민학살'판결]법조계-軍 반응?

  • 입력 2000년 7월 14일 18시 49분


대법원이 베트남전쟁 당시 국군 전투부대 소대장의 베트남 민간인 사살 지휘 혐의를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이 본보 보도를 통해 31년 만에 처음으로 알려지자 학계와 법조계, 군 관계자들은 베트남전의 진실을 규명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베트남 파병은 건국이래 최초의 해외파병으로 64년 9월부터 8년8개월간 계속됐다. 5만여명의 전투병이 상주했던 이 전쟁에서 국군 참전용사 5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국군은 4만여명의 ‘적(敵)’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국은 파병의 대가로 10억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이는 산업화의 기틀이 되기도 했다.

그 이상의 진실은 더 이상 밝혀지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이 있었는지, 또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어떤 억울한 누명과 희생이 있었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를 맡았던 대한변협 관계자들은 그 전제로 사건의 진상이 정확히 규명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지만 당사자들이 사건이 조작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협의 한 관계자는 “당시 사살된 베트남인들이 무기를 소지했던 점에 비춰 그들이 실제 베트콩이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소대원들이 그들을 베트콩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리 대법원이 한국군의 민간인 사살 혐의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의 우리 군과 사법당국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일부 한국군 병사들의 잘못을 공식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다른 하나는 혹시라도 당시의 군사재판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거나 유죄를 선고받은 김종수(金鍾水)씨에게 억울한 점은 없었는가 하는 관점이다. 만약 그럴 소지가 있었다면 이 역시 뒤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것도 민사소송법이 그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어렵다. 대한변협 진상조사위원인 안병룡(安炳龍)변호사는 지금 시점에서 진상을 가리는 열쇠는 △당시 도주해 살아남은 베트남인 2명과 △수사에 참여했던 군 조사관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판결내용과 명백히 다른 증언을 할 경우에는 재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