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드름(종유석·鍾乳石)이 열리고 돌꽃(석화·石花)이 피어나는 등 동식물처럼 살아 숨쉬어야 할 석회동굴들이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훼손과 관리 소홀로 ‘활굴(活窟)’의 생명력을 잃고 급격히 ‘사굴(死窟)’로 전락해 가고 있다.
본보 기획취재팀이 최근 나흘간 동굴전문가 석동일(石東一·48)씨와 함께 전국 10개 석회동굴 가운데 성류 고수 고씨 환선 용연 온달 천곡 노동 등 8곳을 점검한 결과 대부분이 발견 당시의 원상을 회복하기 불가능할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석회동굴을 가장 더럽히는 것은 이끼와 곰팡이 등 청태(靑苔)류의 번식. 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동굴에서 확인됐다. 특히 개방 26년째인 고씨굴(사진)은 통로등, 조명등이 설치된 곳마다 이끼가 무성했다.
전등과 관람객들의 몸에서 방출되는 열로 인한 동굴의 건화(乾化)현상도 심각했다. 자연상태의 동굴 습도는 70∼100%. 그러나 습도가 50% 이하인 동굴이 많았다. 이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종유석 석순 등의 생성 정지. 심할 땐 동굴생성물의 표면이 떨어져 나가는 박리(剝離)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관람객과 도굴꾼들에 의한 훼손도 심각했다. 고씨굴이 가장 자랑하는 옥좌대에서 종유석 30여개는 밑동만 남았고 떼기 힘든 석주 9개만 덜렁 남아 흉물스러웠다.
노동굴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 지점에는 종유석이나 석순이 거의 없었다. 용연굴도 길이 10cm 이상의 종유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처럼 오염이 가속화되면서 동굴생태계도 계속 깨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강원대 원종관(元鍾寬)교수 등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고씨굴에서는 살아 있는 ‘화석곤충’ 고씨갈르와벌레를 비롯해 서식 생물 48종 가운데 27종이 사라졌다. 다른 동굴에서도 10∼50%까지 멸종됐고 박쥐 등 일부 동물은 개체수가 현저히 줄었다.
석씨는 “거의 모든 동굴의 자연 진화가 중단돼 이제 ‘신비의 자연 동굴’은 더 이상 없고 ‘오염된 폐광(廢鑛)’만 남았을 뿐”이라며 “동굴 휴식년제 등 생태계 복원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