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1월 서울 남부순환로에서 김씨의 승합차가 빗물이 고인 도로 웅덩이에 미끄러지면서 가로수와 충돌해 부상을 입은 것. 사고위험에 노출된 도로의 유지관리에 소홀한 행정당국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처럼 도로의 적절한 보수 및 유지관리는 안전운행과 직결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의 도로정책은 ‘시공’만 강조된 나머지 ‘유지관리’는 간과돼 왔다고 입을 모은다. 시공 뒤 의 ‘관리부재’로 인해 도로의 내구연한이 단축되면서 결국 안전운행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빈약한 도로 유지관리 환경을 지적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1100여km의 시도와 교량 및 고가차도 등 수 백여 개의 도로시설물을 관리하는 6개 도로관리사업소의 인력은 250여명. 8개의 대형 한강교량을 비롯해 시도 256km, 고가 및 지하차도 터널 등을 관리하는 동부사업소의 경우 담당직원은 43명에 불과하다. 특히 내부순환로 등 169km의 자동차 전용도로의 관리인원은 9명이 전부다.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잦은 인사까지 겹쳐 도로관리 분야의 전문인력 육성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관리정책으로 인해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예산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도로의 유지보수 비용은 1조3600여억원으로 85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서울시만 한 해 평균 2400억원 이상의 거금이 소요된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차량증가로 인해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감가상각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건설 위주의 땜질식 관리정책과 체계없는 관리업무가 빚은 ‘예산낭비’라고 지적한다.
도로관리정책의 최종 목표는 한정된 예산을 ‘적재적소’에 투입, 양질의 포장도 및 내구도를 유지시켜 도로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 이를 위해선 각종 도로 관련 정보를 통합 분석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8만6900여km에 이르는 전체 도로망 중 포장관리시스템(PMS:Pavement Management System), 교량관리시스템(BMS:Bridge Management System) 등이 구축된 구간은 1만4000여km의 일반국도와 고속국도 뿐이다.
나머지 교통량이 집중되는 특별시 광역시 도로나 지방도 시군도 등은 대부분 비전문가가 차량을 타고 육안으로 도로상태를 점검하는 실정. 반면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각종 첨단 컴퓨터장비를 탑재한 검사차량으로 매년 각 주별로 취합한 상세 도로의 교통량과 포장상태, 교량의 상태, 도로의 혼잡도, 교통사고 등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주요 정책결정에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같은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구축의 효과는 한 해 900억을 상회하던 포장보수비가 91년 PMS 도입 이후 연평균 600억 수준으로 줄어든 국내 일반국도의 관리실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결국 적은 비용으로 안전운행을 보장하는 최적의 도로상태 유지를 위해서는 적절한 관리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