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다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의료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 수술 일정이 연기되거나 외래 진료가 차질을 빚으면서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의약분업은 언제쯤 제대로 정착될 것인가. 또 의료계의 반발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시행 첫날에 나타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약국의 약 부족이었다. 대형병원 앞 약국은 그 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약품은 어느 정도 구비했지만 다른 병원의 처방전까지는 소화하지 못했고 동네의원 주변 약국들의 준비는 더욱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은 대체조제 약은 효능이 떨어지는 싼 약이라는 생각 때문에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대체조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처방전에 쓰여진 대로 약을 구하기 위해 이 약국 저 약국을 몇시간이나 전전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1만3900개 약국 중 약 40% 정도만 처방약을 준비한 상태. 특히 울산 충남 대전 등의 약 준비가 뒤떨어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종합병원이나 일반 병원은 의약분업에 대비, 수가체계 프로그램을 바꾸고 원외처방전 발급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으나 많은 동네의원들은 의료계 집행부가 폐업 돌입 여부로 논란을 벌이고 있는 동안 준비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 일부는 기약없는 ‘한풀이성’ 폐업을 감행, 의약분업의 파행을 부추기고 있다. 의료계의 이번 폐업은 6월과 같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 울산 등의 상당수 동네의원이 동참했고 여타 지역의 동네의원 일부도 휴가 등의 명목으로 문을 닫아 의료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반영했다.
의료계의 이번 폐업 투쟁이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의협과 의권쟁취투쟁위원회가 투쟁 수위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데다 의협 지도부가 사퇴하고 수배중인 신상진(申相珍)의쟁투위원장이 잠적하는 등 폐업 사태를 책임질 지도부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대형병원 중심으로 의약분업이 시행되는 등 의약분업이 대세를 이루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어 계속해서 약사법 개정만 주장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폐업에 동참하지 않고 추이를 관망하는 동네의원들이 많은 것도 이번 폐업 사태가 흐지부지 마무리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폐업 사태는 오래 가지 않더라도 의약분업은 당분간 파행적인 상태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집단이기주의적인 불법 행동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것”이라며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의약분업에 불참하는 의사들의 면허를 취소하는 등 ‘삼진아웃제’를 철저하게 적용한다는 방침.
그러나 정부도 고민이다. 의사들이 협조하지 않는 의약분업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면허 취소 등 정부의 강경책은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래저래 의약분업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험로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의약분업 일지▼
△1998년 8월4일:의약분업추진협의회 의약분업 시행 원칙 합의
△1999년 3월31일:의약계의 시행 연기 청원에 따라 시행 시기 1년 연기
△1999년 5월10일:시민단체 제안으로 의약분업 시행방안 의약계 합의
△1999년 9월17일:의약분업실행위원회 시행 방안 확정
△1999년 11월15일:의료보험 약가 실거래가 상한제 도입
△2000년 1월12일:의약분업 세부 시행방안을 담은 약사법 개정
△2000년 6월20∼25일:의료계 집단 폐업
△2000년 7월1∼31일:의약분업 계도기간
△2000년 7월30일:의권쟁취투쟁위원회 재폐업 결의
△2000년 7월31일:개봉판매 금지 및 대체조제에 관한 약사법 개정안 국회 통과
△2000년 8월1일:의약분업 전면 실시, 의료계 일부 폐업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