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전면 실시 이틀째인 2일 오후2시 서울 동숭동 서울대병원 정문 앞. 병원 인근에 최근 문을 연 D약국의 남자 종업원 2명이 판촉물로 준비한 플라스틱 부채 100여장을 들고 ‘호객 행위’에 정신이 없었다. 그 종업원은 ‘사모님’의 처방전을 들여다보더니 적혀 있는 약의 재고 여부를 휴대전화로 즉각 확인해주기도 했다. 건네준 부채에는 ‘준비된 약국 XXX약국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D약국에 들른 ‘사모님’에게는 자양강장용 드링크가 무료로 제공됐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인근의 대형 약국을 중심으로 단골 손님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각양각색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는 의약분업 초반기에 환자 ‘점유율’을 극대화하려는 약국의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것.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K약국은 1일부터 인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셔틀버스용 승합차를 20분 주기로 무료 운행하고 있다. 승합차 뒤와 옆에는 ‘이 차는 K약국과 신촌세브란스병원을 순환합니다. 정확하고 신속한 조제. 병원과 2분 거리…’라는 글씨를 새긴 현수막을 붙여놓았다.
신촌세브란스 병원 약국에서 10여년간 근무하다 최근에 약국을 개업한 이정렬씨(여·40)는 “손님들이 걸어서 오기에는 먼 거리라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로 했다”며 “다음주부터 약 복용 상담을 위한 책자도 무료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에서 600여m 떨어진 대학로 부근에 위치한 S약국은 약국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차량 50대가 들어설 수 있는 주차 공간을 마련해 손님을 끌고 있다. 약국측은 “초반기라 아직은 걸어오는 손님들이 많다”며 “홍보를 위해 약을 사지 않는 사람의 차량 주차도 당분간 눈감아 줄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병원 주변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했던 ‘고참’ 약국들도 손님을 끌기 위한 노력은 예외일 수 없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의 남서쪽 200여m 앞에서 30년 넘게 영업을 해온 A약국은 지난달 세브란스병원 출신 약사 3명을 고용한 데 이어 약국 위층의 카페를 인수, 손님 대기실로 개조했다. 6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기실에는 카페로 이용됐을 때 깔아놨던 목재 바닥과 각종 영화 포스터 등을 그대로 남겨둬 약국 분위기는 거의 나지 않았다.
예전에 여자친구와 커피를 마시러 종종 이 카페에 들렀다는 엄태진씨(28·연세대 국제학대학원)는 “약 타기 전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남성모병원 인근에서 10여년 간 영업해 온 S약국은 최근 개조한 대기실에 TV 4대를 이어 붙여 멀티비전을 만들고 DVD 상영기를 연결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시간 동안 고화질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대병원 정문에서 부채를 나눠준 인근 D약국의 한 약사는 “서로 엇비슷한 제품으로 장사하는 상황에서 손님 서비스가 약국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