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무속밸리'가 뜬다…사주카페까지 10여곳 성업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44분


《“미아리 한 점집에서 IT(정보통신)업체 이직을 앞두고 가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물어봤더니 IT업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더군요. 그런데 이곳에는 젊은 역술인들이 많아 세세한 부분까지 상담이 가능했습니다.”

3일 정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뒤편 ‘토탈오즈스타닷컴’이라는 복합무속공간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씨(27)의 말. 7명의 20∼30대 역술인들이 업소 개소기념으로 무료로 점을 봐주고 있는 이곳에는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줄을 지어 ‘운명컨설팅’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이곳에서는 ‘상생’‘합덕’등 낯선 역술용어 대신 ‘버클리로 가면 학점에 문제가 있을 운이고 UCLA로 가야 귀국한 뒤 교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카운슬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업소는 최근 4층 건물의 절반이상을 임대해 역술을 주제로 한 인터넷 방송국과 사주카페, 기공술 강좌 학원을 열어 행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서울 강남의 중심 압구정동에 ‘무속 밸리’가 조성되고 있다. 로데오거리 주위에 사주카페나 벤처기업 형식을 빌려 역술원이 들어선 것은 지난해 말부터. 올여름들어서만도 ‘토탈오즈스타닷컴’‘사주.com’‘사주공간’ 등 4,5개 업소가 신규 또는 확장해 문을 열었다. 현재 이들 역술원은 10여곳.

‘사주.com’의 이계원(李啓愿·35)사장은 “여러 분야의 역술인들이 유입되고 있으며 미아리 신촌 등지에서의 유명 역술인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하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역술인들이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데다 PC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지속적인 개인 사주관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미아리 점집촌과의 다른 점이다.

이들 업소는 1만∼2만원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복채’를 책정한 대신 벤처기업처럼 다른 방식의 다양한 수익모델들을 창출해낸다.

인터넷 통신판매를 통해 ‘소원성취부’‘3재 액땜’ 등의 부적 판매를 겸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고객들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화상을 담고 사주 데이터는 따로 관리했다가 궁합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연락해주는 곳도 있다.

지역 특성상 ‘유학’에 관한 상담 수요가 많은 점을 고려해 ‘신비한 점술왕국’에서는 해외 유학파 역술인들을 따로 고용했다. ‘주은모 역학연구소’처럼 도로변 건물 주차장 옆 1평규모의 관리실을 임대해 손님을 받는 곳도 있다.

첨단과 소비문화의 상징 압구정동에 샤머니즘적 무속 밸리가 형성된 데 대해 업계에서는 이곳이 실험정신을 높이 사는 열린 분위기인데다 재개발 등으로 인해 ‘미아리 점술시장’의 위세가 한풀 꺾인 데 따른 반사효과라고 풀이하고 있다.

주부 김미성(金美盛·41·서울 강남구 신사동)씨는 “여성 의류점이나 뷰티숍 등이 근처에 많은 탓에 굳이 따로 시간을 내어 점을 보러가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재야 사회학자 홍성태(洪性太)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심심풀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사주팔자나 궁합의 수요도 늘어나는 듯 보인다”며 “젊은이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걸맞은 적합한 장소로 압구정동이 선택된 것이며 역술업계가 벤처마케팅을 활용하면서 시장이 더욱 확대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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