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전문-자율성 높여 수준향상 기대
책임운영기관이란 한마디로 정부가 수행하는 업무 중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민간의 경영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업무를 보다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 조직과 예산 운용에 있어 유연성과 자율성을 부여하자는 제도이다.
국공립 예술기관의 경우 그 동안 일반행정조직으로 운영돼 오면서 경직성이나 소극성, 서비스정신 부족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됐다. 책임운영기관이 되면 그 장(長)은 정부기관으로서예산 등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동시에 기관의 경영혁신과 행정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국립국악원이 책임운영기관이 됨으로써 생기는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첫째, 조직운영면에서 보면 국악원 직원이 현재는 별정직과 일반직 공무원으로 구성돼 있으나 책임운영기관이 되면 기관장의 인사상 자율권이 신장돼 계급별 정원의 30% 이내에서 국악분야 전문가를 임용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조직의 전문화를 꾀하고 국악 보존과 전승이라는 국악원의 기본 목적을 더욱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책임운영기관이 됐다고 해서 예산이 줄거나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성격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즉 경상비의 불용액 이월이 가능해 예산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일반회계를 특별회계로 전환함으로써 오히려 정부예산 외에 민간기부금 등 다양한 재원 확보가 가능해 예산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책임운영기관이 돼도 국립문화기관으로서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고, 오히려 자율성을 바탕으로 국립기관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 책임운영기관은 정부조직으로 존속될 뿐만 아니라 문화기관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나가기 때문이다.
넷째, 책임운영기관이 되면 기관장의 취향에 따라 국악진흥의 본질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으나, 국악원장은 이미 개방직으로 공모에 의해 외부전문가를 영입토록 돼 있다.
또 책임운영기관이 되면 관련 법률에 따라 기관장은 사업 목표와 계획에 대해 중앙행정기관 장(長)의 승인을 얻어야 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책임운영기관 운영심의회’를 둬 기관장의 직무 내용에 대해 심의하게 돼 있다. 따라서 정부의 관심이 소홀해지거나 국악 진흥의 본래 목적이 변질 또는 훼손될 우려가 전혀 없다.
참고로 1월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립중앙극장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현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책임운영기관화는 궁극적으로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국립국악원을 보다 전문화 자율화 활성화하고 국립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현재 국립국악원 등 경쟁력이 다른 분야보다 취약한 문화예술기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있고 국악계 일부에서도 이론(異論)이 있으므로 여론수렴과 부처간 협의를 거쳐 최종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조창희(문화관광부 ·행정관리담당관)
[반대]문화의 효율-경쟁력 따질수 있나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문화적 주체성을 대변해온 전통음악계에 때아닌 평지풍파가 일고 있다. 국립국악원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문화시책이 전격 발표됐기 때문이다.
책임운영기관이라는 게 무언가. 한마디로 효율성을 높여 수익성을 올리자는 발상이 아닌가. 따라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체에는 양약(良藥)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국악원과 같은 반열로 지정된 중앙보급창, 충남통계사무소, 목포결핵병원, 대구국도유지건설사무소 같은 기관이 그 예다. 하지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기관에는 득보다 실이 많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책 관계자들은 예산권과 인사권까지 주며 자율적으로 운영하라는데, 좋지 않으냐는 설명이다. 그러나 경상비를 빼고 국악원이 공연 등의 사업비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쯤이란 것은 당국이 더 잘 안다. 인사권만 해도 그렇다. 해당 법령에는 중앙행정기관장이 ‘소속 공무원에 대한 일체의 임용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다만 ‘임용권의 일부를 기관장에게 일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별항으로 있을 뿐이다.
책임운영기관의 취지 자체는 좋다.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기관, 특히 국립국악원에의 적용은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많다. 국립국악원의 고유업무는 법령에 규정돼 있듯이 ‘성과의 측정이 가능한 사무’도 아니요 ‘재정수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체 확보할 수 있는 사무’도 아니려니와 ‘효율성과 경쟁원리’를 앞세우며 ‘운영 성과의 책임’을 닦달할 대상 업무나 기관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보 제1호 남대문을 보수유지하며 경쟁원리를 앞세우지 않는다. 팔만대장경이나 고려청자를 놓고 ‘성과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문화재 자체가 경제적 재화로 환치될 수 없는 엄청난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악원의 업무나 위상도 다르지 않다. 그들 음악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경제가치로 따질 수 없는 문화적 부가가치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굳이 행정효율의 책임성을 강조할 게 아니라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문화육성의 순리를 쫓아 국악인들의 자율적인 정진과 내공을 보장하며 자상하게 보살피는 게 문화정책의 정도요 대도라고 하겠다.
국악원의 맥은 신라시대 음성서(音聲署)로부터 이어져 내려온다. 1400여년 전통의 세계 최고(最古)의 국가음악기관이라고 외지들이 특필하는 기관이다. 왕조가 바뀌고 세상이 요동쳐도 맥이 흘렀고, 일제 치하에서도 왕실 조직으로 살아남은, 어쩌면 우리 민족사의 산 증인이자 상징같은 존재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국가는 조건 없이 국악원에 예산을 써야 한다.
세계화의 시대요 문화의 세기라고 호들갑이다. 지금까지 무엇으로 한국에 독자적인 문화가 있음을 만방에 선양해왔으며, 앞으로 무엇으로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부각하고, 국제화의 격랑 속에서 꿋꿋하게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냉철히 생각해 볼 때다.
한명희(서울시립대 교수·전 국립국악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