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그리는 입국제한자 많아▼
이희세씨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라스코동굴 가까이에 있는, 겨우 4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에서 여생을 맞기 위해 지난주부터 집수리를 시작했다. 화가인 그는 라스코동굴이 폐쇄되던 해 숙부인 이응로화백의 부름에 따라 프랑스로 갔다. 1974년 모조동굴의 작업을 맡은 모니크 바르텔의 제의에 따라 벽화작업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초기 3년 동안 벽면에 붙어 모사를 하다가 시력도 많이 잃었다.
그 뒤 그는 파리로 옮겨 한국의 정치현실에 눈을 돌리고 운동가가 되었다. 급변하는 정세에 따라 그의 인생도 격랑을 탔다. 90년대엔 범민련 해외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자기 확신에 따른 행동이 모국의 정부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평가됐다. 그래도 늙으신 아버지를 한 번 뵈었으면 했지만 3년 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건강이 나빠져 폐를 하나 들어낸 뒤, 파리의 살림을 정리했다. 26년 전 동굴벽화 작업 당시 봐두었던 마을로 내려온 것이다. 지금 라스코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가 1만7000년 전 사람들을 대리해서 그린 등이 붉은 들소를 본다. 그는 그 사람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선사시대보다 더 먼 조국을 생각한다.
이씨의 경우는 바로 작곡가 윤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에 가는 것이 반생의 소원이었던 그도 한때 귀국행 가방을 꾸렸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베를린의 가토우 묘지에 묻히고, 주인 잃은 베를린 근교의 집 거실 탁자에는 ‘한려수도’라는 제목의 관광 팜플렛만 남았다. 그 표지에 실린 통영항의 사진을 보고 말년을 보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달 귀국행 비행기를 타려다 좌절한 재독 철학자 송두율교수도 마찬가지다. 윤이상, 이희세, 송두율씨는 우리가 아는 입국제한자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또는 주저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는 최근 해외에 체류중인 입국제한자 21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 역시 전부가 아니다. 그리운 고향을 찾지 못하고 반가운 얼굴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그렇게 많은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입국을 불허하거나 거부한 적이 없다고. 그것은 일면 타당하다. 명시적으로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처분을 하지도 않았고, 그런 내용의 직접적인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포공항에서 공안당국은 그냥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각서나 서약서를 요구할지 모른다. 아니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제한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만히 있는 정부의 태도는, 우리 감옥에 양심수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외치는 것이나 똑 같다.
▼정부 무조건적 허용 안되나▼
다음주, 해마다 맞는 국경일인 광복절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매양 그렇듯이 대사면이 단행된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는 ‘밀레니엄 대사면’으로 대상자가 3만명에 이른단다. 그 희망의 명단에, 재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상 사면 복권의 대상이 안된다는 형식적 이유로, 우리가 기다리는 그 사람들의 이름은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금강산을 관광하고, 이산가족이 상봉을 해도, 해외에 있는 그 사람들은 입국할 수 없다. 남북화해의 시대에 국내외 화해는 왜 배제돼야 하는가. 이번 기회에 정부는 입국제한자들에 대한 조건의 해제를 선언할 용의는 없는가. 아니면 여야가 협력하여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용기는 없는가.
나는 서울에서 이희세씨를 만나고 싶다. 베를린이 아닌 강남역 가게에서 평양 윤이상 앙상블의 레코드를 사서 듣고 싶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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