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24시']응급실로 몰려 '살려달라' 호소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34분


10일 전공의 전임의에 이어 262명의 의대 교수들까지 외래진료 중단을 선언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8∼10층 내과병동. 평소에는 14개 병동, 450개 병상이 입원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거렸지만 이날 오후 2시에는 절반인 250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아예 텅 빈 병실도 있었다. 중환자들의 신음소리가 간혹 흘러나올 뿐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신장 기능 이상으로 입원한 고3 수험생 김모군(18)은 “퇴원하면 재입원이 어려울 것 같아 최대한 미루고 있다”며 “퇴원해도 일주일에 한번 외래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의사들 파업 때문에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같은 시간 내과 진료실. 21개 방 중 2개 방 앞에서만 20여명의 환자가 눈에 띄었다. 평소 이곳의 진료 대기자는 100여명. 약이 떨어진 환자를 위해 2개의 방을 ‘긴급처방실’로 운영했지만 진료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진료중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과에서는 몇몇 교수들의 진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곳에는 환자가 몰려들었지만 마냥 시간이 지연됐다.

“오후 3시가 진료 예약 시간인데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인 만큼 잘잘못을 떠나 하루빨리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흉부외과 외래에서 만난 김종욱(金鍾旭·43·경기 시흥시 정왕동)씨의 얘기다.

일부 환자는 교수 연구실까지 찾아가 매달렸다. 호흡기내과 심영수(沈永秀)교수는 병실에 있다가 연구실에 ‘환자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가기도 했다.

병실 외래와는 달리 응급실은 밀려드는 환자들로 가득찼다. 평소 60명이었던 응급환자가 90명까지 몰렸다. 응급실측은 부족한 침대를 마련하기 위해 수리중인 침대를 ‘응급수혈’하는 등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입원환자 치료의 70∼80%를 담당하는 전공의가 빠져 입원실로 가야 할 응급환자가 응급실에서 그대로 치료받는 경우도 많았다.

응급의학과 이중의(李重宜)교수는 “평균 하루 15명 정도의 응급환자가 입원실로 올라가는데 전공의 파업 이후 2, 3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응급실에선 환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과도한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온 김모씨(26·여)의 보호자는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싸운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며 “의사들의 명분 없는 파업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의사들을 비난했다.

그동안 전공의 없이 격무에 시달려온 교수들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피로를 못이겨 의사숙직실의 침대 신세를 지는 의사도 보였다.

내과 김유영(金有瑩)교수는 “몸이 너무 지쳐 뜻하지 않은 실수를 할까 두렵다”며 “빨리 깜깜한 터널에서 벗어나 빛이 보이고 병원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월말 정년퇴직을 앞둔 내과 김정룡(金丁龍)교수는 “34년 동안 환자를 봤지만 요즘처럼 착잡한 기분은 처음”이라며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를 외면할 수 없어 오전 진료를 했지만 가슴이 그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약사가 배달까지…인천 4개약국 서비스▼

10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용동 동인천 길병원 2층 대기실. 팩시밀리를 이용해 병원 앞 길메디칼약국에 관절염 약 1주일치를 주문한 김인순씨(68·여·인천 남구 학익2동)가 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 뒤 약사 김태훈씨(32)가 나타났다.

“김인순씨가 누구세요?”

김약사는 환자 김씨를 만나 1주일치 약을 주면서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식후 30분에 복용할 것을 당부했다.

김약사는 “이 약에는 위장보호약도 첨가했다”고 설명했다. 환자 김씨가 약값 4200원을 지불하자 김약사는 “건강하세요”란 말을 하고 돌아갔다.

의약분업 실시로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약국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약사가 직접 병원까지 약을 배달해주는 이색 약국이 등장했다.

동인천 길병원에서 반경 100m 이내에 있는 길메디칼약국을 비롯한 동인천약국, 신세계약국, 싸리재약국 등 4개 약국. 이 약국들은 5일부터 ‘약사 직접 배달서비스’를 시작해 환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서비스는 환자가 원내에서 처방전을 약국에 팩시밀리로 보내면 약사가 직접 환자에게 배달해주는 방식.

약사 배달서비스는 이들 약사들이 동인천 길병원 이수찬 원장(40)을 찾아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약사 배달서비스를 하겠다”고 부탁을 했고 이원장이 이를 수락해 이뤄졌다.

이원장은 “우리 병원은 관절염 환자와 노인성 질환을 앓는 환자가 하루에도 200명이 넘는다”며 “관절염 환자가 2층 계단을 내려가 약국을 찾은 뒤 주사약을 사 갖고 병원으로 다시와 주사를 맞는 등 큰 불편을 겪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인천〓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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