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당경쟁으로 폐업 속출▼
▽침체 원인〓많은 교포들은 제살깍기식 과당경쟁을 큰 원인으로 꼽았다. 봉제업 잡화점 세탁소 손톱관리업 등 몇몇 업종에 몰려 과열경쟁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경제 최대의 돈줄인 의류도매시장은 과당경쟁의 대표적 사례. 한인들이 ‘자버(jobber)시장’이라 부르는 의류도매 점포들은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의 패션거리에 밀집돼 있다. 5년전 400여곳이던 한인업체 수가 최근 1000개 정도로 두배 이상 늘었다. 한인들간 경쟁이 임대료 상승을 부채질한 것은 물론 임대료에 웃돈을 얹어주는 ‘권리금’ 문화도 낳았다. 최근 한 업소가 임대계약을 새로 하면서 7만달러의 권리금을 요구받자 미국인 건물주를 고소한 사건이 LA타임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8년째 자버시장을 지켜온 전영애씨(40·여)는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부터 확보하자는 생각에 덤핑이 늘어나면서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뉴욕에서도 맨해튼내 식료품상과 손톱관리업소의 80%이상을 한인들이 운영할 정도로 교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건물에 동종의 가게가 입주해 분쟁을 겪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미국 경기 활황의 혜택이 부유층에 몰리는 바람에 교포업체의 주고객인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저소득계층의 구매력이 늘지 않고 있는 것도 한인사회의 경기를 정체시키는 요인이다.
미주 외환은행 김동일부행장(47)은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혜택이 줄어든데다 물가와 은행 대출이자율이 상승, 저소득층을 상대로 장사하는 한인업소들은 경기호황을 느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히스패닉-흑인 불매운동▼
▽인종갈등도 부담〓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한인 델리(식료품상) 앞에서는 요즘 매일 같이 불매운동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이 업소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보이콧, 보이콧”을 외친다. 뉴욕 델리의 80%를 차지하는 한인업소들은 대부분 불법입국한 히스패닉을 고용하고 있는데 시간당 5달러15센트 이상을 지급해야하는 최저임금제나 초과근무수당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불매운동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한인상점들이 늘고 있다. 두달째 시위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트 내추럴 델리의 한상복사장(41)은 “시위로 하루 매상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한인업소들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데다 단순한 노동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한인들은 자칫 히스패닉계와 한인간 인종갈등으로 비화할 소지가 높다는 점에서 91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뉴욕한인회 김정호사무총장(32)은 “다른 업소도 노동법을 안지키기는 마찬가지인데도 한인에 대한 불만으로 한인상점을 불매운동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2세들 창업으로 탈출구▼
▽그래도 희망은 있다〓최근 ‘주류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한 이민 1.5세이나 2세가 한인사회에 희망이다. 이들이 사회경험을 쌓으면서 안정된 둥지와 한인들의 전통적인 업종을 박차고 새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만5000달러로 인터넷 쇼핑몰 가격비교 사이트 마이사이먼닷컴(mysimon.com)을 차려 7억2000만달러에 팔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마이클 양(28)이나 골드만삭스에서 연봉10만달러 의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인터넷 택배업체 코즈모닷컴(cozmo.com)을 세운지 3년만에 종업원 3000명의 기업으로 일궈낸 조지프 박(28) 등이 대표주자다.
<뉴욕로스엔젤레스〓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