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金正吉)법무부장관은 14일 사면 내용을 발표하면서 “분단 55년의 과거를 극복하고 새 천년 첫해에 이루어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으로 민족의 평화와 협력, 통일을 향한 새 역사의 기틀이 마련됨에 따라 대규모 사면을 단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법부와 시민단체들은 새 정부와 새 천년이 시작됐는데도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비판은 ‘정기적인 대규모 사면’과 ‘권력형 비리와 선거사범 등에 대한 무차별 사면’이라는 두 가지 행태에 모이고 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건국 이후 모두 84차례의 사면이 이루어졌다”며 “대통령 취임과 3·1절 광복절 등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사면은 국민이 법을 가볍게 생각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판사도 “법원에는 오래 전부터 ‘매년 3월과 8월에는 법관 아닌 대통령에 의한 큰 재판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며 “홍석현(洪錫炫)중앙일보회장의 경우 5월에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는데 석달도 안 돼 사면돼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번 사면에서도 권력형 비리사범들이 대거 포함돼 대통령 스스로 천명한 ‘국민 대화합’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고 비판했다. 김현철(金賢哲)씨가 복권된데다 한보사건과 12·12 및 5·18,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15대 총선 선거사범 등 지도층 인사 27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경실련 사무총장인 이석연(李石淵)변호사는 “권력형 비리자의 사면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법률로 일부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선거사범에 대해 사면이 불가능하도록 법률로 제한하고 있고 74년 당시 포드 대통령의 닉슨 전대통령 사면 이후 비판적 여론이 반영돼 대통령의 사면권이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인 박원순(朴元淳)변호사도 “15대 총선사범을 한번 출마하지 못했다고 사면한다면 16대 총선사범도 처벌할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 사면 일지▼
△98.3.13〓취임기념(3만4000여명)
△98.8.15〓건국 50주년 경축(4800
여명)
△99.3. 1〓취임 1주년(8812명)
△99.8.15〓광복절(2864명)
△2000.8.15〓광복절(3만647명)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