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권이혁/정부와 의사가 힘 합쳐야 할 때

  • 입력 2000년 8월 17일 17시 05분


6월 의료대란에 이어 8월 대란이 일어났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보기 힘든 사례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선배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가슴 아프고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원래 취약하고 때로는 오합지중(烏合之衆)이라는 평까지 들었던 의사단체가 이번에는 일사불란하게 뭉치고 대단한 의지를 보였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번 의료대란이 우연하게 발생했다고 보지 않는다. 이제까지 장구한 기간에 걸쳐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의약분업을 계기로 분출한 것이다. 그동안 의료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하고 견디기 힘든 진료환경의 개선을 건의해왔다. 상식을 초월하는 저렴한 의료수가나 합리적 의료전달체계 수립 등 진료환경의 개선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대정권은 의료인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미봉책으로 그때 그때를 넘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진료 환경속에서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의료인에 대한 비난과 평가는 가혹했다. 급기야 의료인들, 특히 젊은 의료인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상당수 병의원이 문을 닫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때 정부에서 의료행정을 맡았던 필자는 의료대란을 맞이해 자조적(自嘲的)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 새삼스럽게 자신을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하게 되는 것이다.

작년 말부터 의사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여러차례 개최돼 의료제도와 의료환경에 대한 충정어린 건의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이들의 건의는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6월 대란이 발생하였던 사실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전문직종이며 마음놓고 진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보람을 느끼고 존경도 받게 된다. 의사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생명 앞에서 남이 할 수 없는 소임을 다해야 하는 전문가일 뿐이다. 의료란 의사를 정점으로 하여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팀워크다.

어느 경우에나 전통적인 문화를 하루 아침에 획일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파생되는 까닭이다. 이를 예방하는 데는 완벽한 준비와 단계적 진행이 전제가 된다. 의약분업이 계기가 된 이번의 대란이 이같은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견이기는 하지만 예컨대 선택(임의)분업도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는 일은 어느 모로 보거나 불행한 일이다. 그동안 의료인, 특히 젊은 의사들은 자신들의 뜻을 충분히 전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보다 나은 의료의 앞날을 위하여 정부와 의사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서 대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는 것은 이론 이전의 상식이다. 정부는 강경일변도가 아니라 의사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의사들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조건의 제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새삼 음미해 볼 만한 시점이다.

이번의 대란이 전화위복의 계기로 변하기를 바라는 필자의 소망은 간절하다. 진료현안의 해결은 물론이고 의료의 백년대계를 위한 대책 수립도 필수 과제다. 예컨대 의사의 과잉배출을 비롯한 의학교육의 제반 문제점, 합리적인 의료전달체계의 수립, 현행 의료보험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나 사보험제도의 도입등 여러 과제가 다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가 중요하다는데 대하여는 사족을 붙일 나위가 없다. 의사가 정부를 믿고, 정부가 의사를 믿고, 환자가 의사를 믿는 환경에서 우리들의 생명과 건강은 더욱 빛나게 된다. 의사에게는 의권확립과 더불어 의도 창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권이혁(성균관대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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