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학생의 안타까운 표정에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배경삼아 시내 한복판에 서있자니 더욱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안전운전에 관해서는 스스로도 당당하게 말할 처지가 못 되지만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났던 씁쓸했던 경험이 떠올라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퇴근하면서 차를 주차하려고 후진을 하고 있었다. 느낌이 조금 이상해 거울을 통해 뒤를 쳐다보니 외관이 몹시 허름해보이는 택시에서 험상궂은 인상의 기사가 내리고 있었다. 다가가자마자 차마 옮겨 적을 수 없는 욕설을 해대던 기사는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입원을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경미한 충돌이여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해결될 줄 알았던 나로서는 그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보험처리를 하면 수가가 많이 올라갈테니까 현금으로 주면 봐주겠다는 그의 친절한(?) 청구를 거절하자니 더욱 속이 쓰렸다. 근본 원인이야 물론 주의 운전을 게을리 했던 나에게 있었겠지만 그런 일을 겪고보니 누구나 억울한(?) 가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사고를 냈던 그 여학생은 집에 알리지 말고 어떻게든 자신의 아르바이트 돈으로 해결해보자고 한참동안 발을 동동 굴렸다. 그 애처롭던 표정을 거절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학생, 비록 엄마에게는 혼났겠지만, 나는 방송 때문에 앓아누울 시간도, 여력도 없으니까 보험료 인상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만약에 사고가 나더라도 무조건 돈을 주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거든요.”
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