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매표소 왼쪽 여승당 밑에 있는 고풍의 초가건물인 수덕여관은 세계화단의 거장으로 고국을 향한 길이 막힌 채 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고암 이응로(顧菴 李應魯)선생의 본가다. 여관 주변에는 고암선생이 ‘동베를린사건’으로 일시 귀국한 뒤 머물면서 그린 문자추상 암각화 2점과 음각서 2점이 있다. 이 작품은 충남도에 의해 96년 도지정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됐다.
이같은 고암선생의 얼이 담긴 이 건물이 훼손될 위기를 맞고 있다.
수덕사 주변 재정비 사업으로 사찰 입구의 모든 식당과 기념품가게 등이 철거되는 데다 지난 50여년 동안 이 여관을 관리해온 고암선생의 본처 박귀희여사(92)가 건강악화로 지난 4일 이곳을 떠나 경기 성남 분당의 양자 집으로 갔기 때문.
박씨의 부탁을 받은 관리인 이모씨(62)가 수덕여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될지는 의문이다. 충남도에서도 주변 식당 등이 내년까지 모두 철거되면 여관 겸 식당인 이 수덕여관도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여사를 모시고 있는 며느리 권채원씨(75)는 “그동안 건물을 관리해 온 어머님이 노환으로 기동도 못하고 있어 여관이 제대로 관리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충남도는 박여사 가족들을 설득해 이 여관건물을 수덕사에 기증하도록 한 뒤 원형을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예산〓이기진기자>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