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의 1년차 이대호(李大豪·34)씨의 얘기. “미국에 가면 3∼5년은 다시 고생하겠지만 그래도 내과 전문의 자격을 따면 연간 10만∼15만달러(1억2000만∼2억2500만원)는 보장받는다.”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과 전공의 9명중 2명도 외국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공의 4년차인 이모씨(32)는 얼마 전 사직서를 내고 튜브메드㈜란 의료벤처기업을 차렸다.
의사들은 요즘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슴깊이 다가온다고 말한다. 상당수 의사들은 외국행이나 전직을 꿈꾸고 있다. 의약분업실시 등 새로운 의료환경에도 불구하고 소득감소가 예상되고 의료인력 과잉배출로 앞날이 결코 밝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헌신적으로 병자를 돌보는 참의사’와 ‘생활인으로서의 의사’ 사이에서 고민한다. 국립경찰병원 인턴 황희진(黃熙振·26)씨는 “모든 의사가 허준 같은 사람일 수 없다”며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투철한 의술인이 돼야 하지만 동시에 생계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생활인”이라고 말했다.
의약분업 이후에 처한 사정은 심각하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 분업을 앞두고 정부가 약값 마진을 없앤 것이나 약을 직접 다루지 못하는 데 따른 수입감소 등 때문이다. 과별로 차이는 있지만 수입의 30∼50% 가량을 약값에 의존해 왔던 내과 소아과는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내과 개원의 A씨. 환자는 하루 평균 50여명. 하루 수입은 약 40만원. 한달 평균 1000만원이지만 간호사 2명, 방사선 기사 1명 등 3명의 월급(450만원)과 운영비(400만원)를 제하면 집에 가져갈 수 있는 돈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분업 전엔 하루 환자 60∼70명에 수입은 60만∼65만원이었다. 한달 총수입은 1500만∼1625만원. 직원 봉급과 운영비를 제하고도 500만∼600만원은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의약분업 실시로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개업을 꿈꾸는 전공의나 전임의들은 그동안 의사가 되기 위해 들어간 학비도 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대를 졸업할 때까지 6년간 내는 학비는 3400만(국공립대)∼4000만원(사립대). 여기에 30여개 과목당 원서 한 두권은 기본으로 사야 하는데 권당 15만∼20만원이 보통. 여기에 생활비까지 더하면 3600만(서울 학생)∼7200만원(지방출신 학생)이 추가된다.
의사 한 명이 배출되기까지 1억원에 가까운 돈이 드는 셈. 다른 대학생들은 의대생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졸업 후 받는 연봉은 인문대생이 오히려 많다. 레지던트 4년차 연봉이 2500만원대에 불과하지만 인문대 졸업후 대기업에 들어간 고교 동창들의 연봉은 3000만원 안팎.
서울대 내과 전공의 1년차 윤원재(尹元在·26)씨. “한 달에 절반 이상 밤을 새며 환자와 씨름한다. 지금까지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버텨 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비참한 생각이 든다.”
쏟아지는 의료인력도 의사의 지위를 추락시키고 있다. 5년 뒤면 현재 개원의(1만7000여명)와 비슷한 수의 의사가 더 배출된다. 1988년 3만6785명에 불과했던 의사수가 99년말 현재 6만7368명으로 늘었다. 문민정부 시절 의과대 과잉신설이 원인. 의사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과당경쟁에 따른 수입감소와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 보내는 시민단체나 시민들의 눈길은 따갑다. 분업 시행 뒤에도 모든 의사가 전처럼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부문이 다 변하는 마당에 의사들만 기득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신현호·申鉉昊·변호사)
“의료라는 공공서비스를 책임지는 의사에 대한 사회적 적정수입을 보장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는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과 김창엽(金昌燁)교수는 이런 해법을 내놓았다. “의사 개인의 절대적 수입도 문제지만 의사간 상대적 수입도 문제인 만큼 환자 수에 따라 보험수가를 달리 적용하고 제3차 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를 분산시켜야 한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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