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사]"의약분업 수정-폐지" 80%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41분


의약분업으로 시작된 의료계 폐업사태는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간 한국의 의료계가 안고 있던 문제점을 속속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세대 손명세 (孫明世·예방의학)교수는 한국보건의료체계에 대해 “규제는 하면서도 돈을 들이지 않는 정부와 눈앞의 이익만 추구해온 의료공급자, 무관심한 의료소비자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면서 이러한 체계는 “의사도 환자도 모두 피해자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8월 의약분업 전면실시와 병의원 집단폐업을 겪으면서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달라졌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리서치가 8월 실시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국정수행평가 여론조사결과에서도 의약분업은 의약계와 협의하면서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39.9%, 전면수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8.2%에 이르는 등 어떤 형태로든 의약분업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80% 가깝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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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초 ‘정부의 의약분업안 반대’로 시작된 의료계 폐업의 배경에는 동네의원이냐,병원이냐에 따라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입장들이 혼선에 혼선을 거듭했다.

이러한 혼선은 약사법 개정보다는 진료권 문제에 관심이 큰 전공의들이 2차 폐업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완전분업’과 ‘소신진료 보장’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료계가 ‘완전한 의약분업’을 내세우는 이유는 결국 의약분업 무산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이번 집단폐업 사태는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큰 틀을 어떻게 짜야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의료를 공공재로 파악하느냐(의료사회주의),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상품(의료자본주의)으로 볼 것인가를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질은 낮더라도 온국민이 평등한 진료를 받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의 개념을 치료 위주에서 예방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서울대 김용익·金容益 교수·의료관리학)

이는 의료시스템이 사회보험이나 조세로 충당돼 전국민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돼 있는 유럽 모델과 유사하다. 의사들이 국가에 고용돼 있는 영국에서는 과잉진료는 있을 수가 없고 의사는 치료보다 예방에 치중한다.

반면 의료계 일각에서는 민간보험의 도입과 차등진료를 통한 고급의료의 확대를 주장한다. 의료보험은 극빈층을 위한 공공의료 비용으로 돌리고 민간보험을 도입하자는 것이다.(연세대 윤방부·尹邦夫교수·가정의학과장)

환자가 의사선택권을 갖고 의사도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대우를 받으며 병원끼리도 서비스 경쟁이 이루어지는 미국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체제에서는 공공의료가 취약해지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경희대 정기택(鄭起澤·의료경영학)교수의 얘기. “한국에도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질병보험에 인파가 몰리고 있으며 이는 경제 논리에 따른 현실이다. 이는 시장원리 도입의 불가피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29개 생명보험사들은 99년 한 해 동안 ‘건강보험’ ‘개인의료보험’ 등 질병보험상품을 전년도에 비해 50% 가량 늘어난 393만7000건이나 판매했다.

문제는 국민보건의료는 공공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의료체계는 철저히 시장메커니즘에 의존하는 민간부문이 주도하고 있다는 현실.

울산대의대 조홍준(趙洪晙)교수는 “병원폐업의 공백을 공공의료기관이 메운 사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공공의료기관수를 다른 나라 수준인 30% 정도까지 늘리지 않고서는 21세기 노인인구 증가와 통일 이후 붕괴한 북한의 의료환경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결국 의료의 공공성과 경쟁력은 모두 쫓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다. 한국의 의료 백년지대계는 어떻게 세울 것인가.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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