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에 관련된 박혜룡(47·구속) 현룡씨(40·전 청와대 해외언론담당 행정관) 형제의 보증청탁을 거절한 뒤 경찰청 조사과(일명 사직동팀)의 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운영(李運永·52)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이 4월 청와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본보 취재팀이 입수한 A4용지 20여장 분량의 탄원서에서 이씨는 지난해 2월 박씨 형제가 영동지점으로 찾아와 15억원을 대출 보증해줄 것을 ‘강요’한 상황을 상세히 적시하며 사직동팀과 이 관계자가 직간접적으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사직동팀으로부터 자신이 조사받은 날짜는 지난해 4월22일,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최수병 당시 이사장이 전화를 받은 날짜는 4월29일, 자신이 사표를 낸 날짜는 4월30일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씨는 또 “사표를 내던 당일 사직동팀 관계자로부터 압력성 전화 1통, 최이사장으로부터 사표제출을 종용하는 전화 3통을 각각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사표 제출에 앞서 박씨 형제가 대출 압력을 가하던 상황과 관련해 이씨는 “99년 2월 추가로 15억원에 대해 신용보증해 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또 다른 모 인사로부터 있었으나 거부했다”면서 이 거부가 자신의 사표제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박씨 형제의 요청을 거절하며 “내각제가 되면 권불십년(權不十年)인데…”라고 말했고 이 말이 박씨 형제에게 알려져 지난해 4월22일 사직동팀 수사관 3명이 찾아와 △오전10시반부터 11시까지 영동지점 사무실에서 △오전11시40분부터 오후3시40분까지 강남경찰서에서 △오후4시반부터 9시반까지 서울 R호텔에서 총 11시간을 조사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대출보증 조건의 리베이트 수수 및 차명등기한 부동산 소유 여부 등을 조사받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수병 당시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게 압력성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사는 29일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나의 직책상 일개 일선지점장의 비리는 이래라 저래라 할 만큼 신경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종대·이승헌기자>orionha@donga.com
▼이운영씨 부인 인터뷰▼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52)씨의 부인 이광희(李光姬·53)씨는 “당시 남편이 박씨 형제가 요구한 대로 대출 보증을 서줬다면 지금처럼 전국을 떠돌며 수배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사직동팀은 이 전지점장의 대출보증 관련 비리를 수사한 것뿐이라는데….
“고위공직자의 비위를 수사하는 사직동팀이 일개 지점장을 수사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자신들을 ‘박지원 당시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의 친조카’라고 소개했던 박씨 형제의 입김이 분명히 작용한 것이다.”
―이 전지점장은 다른 대출보증의 대가로 1000만원을 수수했다는데….
“그랬는지 여부는 나중에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남편이 잠적한 뒤 박혜룡씨와 만난 적이 있는가.
“올해 1월7일 한번 만났다. 그때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랬더니 박씨는 자신이 박지원씨의 친조카는 아니라면서도 박씨의 부인을 ‘숙모’라고 호칭하며 그 날 만난다고 하더라.”
―남편과는 연락하나.
“가끔씩 전화로 상황을 물어온다. 지난해 사직동팀 수사가 시작된 직후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에서 거주한다. 집안이 파탄났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